이상면 편집인

자그마한 땅 덩어리를 가진 나라, 그러나 그 역사 속엔 참으로 수많은 얘기가 담겨 있다. 그 많은 얘기 가운데 오늘 한 가지를 해 보고자 한다.

바로 방랑시인 ‘김삿갓’에 얽힌 얘기다. 실존하지 않는, 그야말로 얘기로만 있을법한 존재가 바로 김삿갓 방랑시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얼마 전 탐방 차 강원도 영월을 방문했을 때, 그는 엄연히 실존했으며 가슴 아픈 사연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아 그래서 삿갓을 쓰고 다녔구나’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본명 병연은 1807년 어린 나이(6세)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평안도 선천 고향을 뒤로하고 집을 떠났다. 가족이 찾아 나선 곳은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十勝地)’였으며, 바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어둔(於屯, 격암 남사고가 피난처로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이라 일컬은 곳) 바로 김삿갓의 집터가 있고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있는 곳이다.

이들은 왜 정든 고향을 버려야 했고,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됐을까.
조선 후기 경제적 성장과 함께 나타난 사회적 모순이 급기야 ‘홍경래의 난’을 낳았고, 그 홍경래 난에 당시 김병연의 조부 선천부사 김익순은 투항을 하게 되며, 훗날 김익순은 처형당한다. 이 일로 그의 후손들은 역적의 자식이 되어 멸시천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폐족(廢族)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폐족의 신세가 된 그들은 신분을 감추고 숨어 살았으며 집안내력을 모른 채 자라던 병연의 나이 20세 되던 해, 영월 관풍헌에서 열린 백일장에 응시해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인 것은 장원급제를 하게 된 그 글의 내용인즉 ‘논정가산충절사탄 김익순죄통우천’이라는 ‘홍경래 난’ 당시 투항한 김익순의 죄를 조롱하고 탄핵하는 글이었다.

그 뒤 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비로소 선천부사 김익순이 바로 자신의 조부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알고 난 병연은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점과 폐족의 후손을 자책하며 “저 푸른 하늘을 어찌 보겠는가?”하고 조상과 나라에 죄인임을 고백했다.

결국 그는 이로 인해 죽장을 들고 삿갓을 쓰고 집을 버리고 팔도강산을 유랑하게 된다. 그의 유랑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지는 세태를 풍자하는 한시는 우리 서민들의 한을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병연 가족이 고향을 등지고 찾아 나섰던 곳이 정감록에 기록돼 있다는 ‘십승지’라는 곳이다. 바로 이 ‘십승지(十勝地)’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십승지’가 언급되기로는 남사고가 쓴 ‘격암유록’에도 잘 나타나 있으며, 十勝地라 함은 ‘십자가의 도로 싸워 이긴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왜 이 십승지를 찾아 나섰다는 것인지에 필자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는 불과 120여 년이라는 게 정설이다. 숫자 열 십이 아닌 기독교에서 죄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의미한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이니, 그렇다면 도대체 그 옛날 기독교가 들어오기도 전에 왜 기독교의 상징성을 지닌 십자가를 언급해 놨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얻을 수 있는 해답은 오늘날 기독교 내지 종교세계에 일어날 예언적 성격을 띤 예언서의 예언이었음을 감지하게 되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서에 보면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이 실제 기록돼 있는 게 아닌가. 십자가의 도로 싸워 이긴 이긴자(계 12장)와 이긴자가 창설하게 되는 열두지파(계 7장, 14장)가 바로 十勝地(非山非野 즉,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닌 사람이 십승지라는 의미)임을 깨달을 수 있다.

바로 그 이긴자에게 하늘의 모든 것이 임해 오니(계 3:12) 그 곳이 바로 틀림없는 십승지요 구원의 처소(계 14장, 구원자 어린양이 서 있는 곳)인 것임을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 보충설명을 해 본다면, 우리 유불선을 포함한 모든 종교의 종착지가 바로 이 경서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 기록은 십승지를 미리 말한 선지자들의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대목임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병연 가족이 찾고자 했던 십승지를 사실상 그들은 찾았던 것이었다. 바로 그들이 찾아 들어온 곳이 표면적 명당 어둔(於屯)이 있는 십승지이자 안식처 곧 寧越(편안할 영, 넘을 월)이었던 것이다. 영월, 시대의 모순과 부정과 부패, 그리고 멸시 천대를 상징하던 평안도 서천을 벗어나 안식의 처소인 영월의 어둔을 끝내 찾아왔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삿갓이란 한 인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십승지 곧 신앙인들이 그토록 바라고 염원하는 구원의 처소가 남아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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