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희망버스에 대해 사실 논하고 싶지 않았다. 첨예한 이슈이기는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수구꼴통이니 좌빨(좌익빨갱이)이니 하는 매도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또한 노사문제를 가지고 제3자가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한쪽의 주장만을 ‘옳다’고 하고, 다른 한쪽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본질은 지난해 12월 사측이 노조에게 400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통보한 데서 기인한다. 전체 근로자 2000여 명이 채 안되는 상황에서 400명의 정리해고는 5명 중 1명이 해고된 꼴이다. 해고된 동료의 아픔이나 이를 지켜봐야 하는 동료의 아픔은 그들만이 아는 상처다. 뿐만 아니라 한진중공업의 대량 정리해고로 인해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인원감축까지 감안하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정리해고자 가족 입장에서 보면 더 기가 막힐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어 닥친 가장의 실직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을 것이다. 한참 커나가는 아이들의 학비며 생활비도 막막할 것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에 있어서 노동자들만의 문제로 해고를 당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나 지금의 한진중공업 사태는 노동자들의 문제로 인한 경영악화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년 동안 수주 한 건 없는 경영 현실에서 정리해고 없이 회사를 유지하기란 사측 입장에서도 불가피한 조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3년 동안 유독 한진중공업만 수주하지 못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 수주를 하지 못한 것인지, 수주를 안 한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경영진은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또한 경영진과 수주 담당자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노동자들에게 먼저 밝혔어야 옳다. 그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회사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정리해고가 어쩔 수 없는 다수를 위한 희생인지를 함께 논의했어야 했다. 그런 것들이 무시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분노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그렇게 시작됐고 지금까지 해명조차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치해오던 노사가 어렵게 합의점을 찾았고 노사는 합의했다. ‘희망버스’를 만들기 전에 말이다. 한진중공업의 노사가 합의점을 찾은 데는 상호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사측의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했어야 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동료를 그대로 보내고 싶지 않은 절실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화와 타협의 원칙아래 합의를 했다. 이러한 노사 상호 간의 합의를 제3자가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더구나 타지에서 온 데모꾼들이 개입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희망버스 기획단 관계자는 지난 24일 “희망버스는 비정규직 차별과 정리해고 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절망을 함께 나누자는 뜻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취지나 목적은 좋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루고자 다른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 또한 옳지 않다. 더구나 정치적 숨은 목적이 있다면 그 진정성마저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희망버스 참가자와 부산 영도 주민들과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는 모습을 언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곳 주민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들로 인한 피해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아무리 희망버스가 좋은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고는 하나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부산 영도 주민들에게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이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부산 영도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옳지 않다.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구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희망버스라면 그것은 새로운 ‘갈등버스’일 뿐이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갈등버스’는 중단되어야 한다.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은 지금 외국에 체류 중이다. 그리고 그는 침묵 중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진중공업 사태는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국내로 들어와 진지하게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이 사태 해결의 열쇠는 조남호 회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