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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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도쿄올림픽 여자배구에서 ‘배구 여제’ 김연경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이 눈물겨운 투혼을 발휘하며 극적인 4강 신화를 이뤄내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도쿄올림픽 직전 열린 올림픽 전초전인 2020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3승15패로 종합 15위에 그친 한국여자배구는 이번 올림픽에서 4강권 진입은 꿈도 꾸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한국여자배구는 도쿄올림픽 뚜껑이 열리면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예선전에서 VNL 4강에 올랐던 개최국 일본을 예선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물리치고 8강에 올라 VNL 3위를 차지한 터키마저 극적인 3-2 승리를 이끌어내 마침내 4강에 올랐다. 특히 한국배구에 큰 영향을 준 일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이뤄낸 여자배구의 4강 쾌거는 대단히 값진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부문에 걸쳐 일본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쓰는 많은 용어들도 자연히 일본식 용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야구에 이어 배구에서 특히 일본식 용어가 많이 사용됐다.

국내 배구에서 국제화된 정통 배구 용어로 알고 쓴 용어들이 대부분 일본식 영어였다는 사실이 이번 도쿄올림픽을 통해 드러나 큰 아쉬움을 느꼈다. 한자어인 배구(排球)는 당초 일본식 한자가 아닌 중국식 한자이지만 표준화된 영어로 알고 있던 배구 기술의 기본 용어인 ‘토스(Toss)’ ‘리시브(Receive)’는 물론 포지션 용어인 ‘레프트(Left)’ ‘라이트(Right)’ ‘센터(Center)’ 등이 일본식 영어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볼을 띄운다는 의미인 ‘토스’의 국제 표준 용어는 ‘세트(Set)’이며 상대 볼을 받아낸다는 의미인 ‘리시브’는 국제배구에서 ‘범프(Bump)’를 사용한다. 포지션 용어도 국제 표준어로는 ‘레프트’ 대신 ‘아웃사이드 히터(Outside Hitter)’ ‘라이트’는 ‘아포짓히터(Opposite Hitter)’라는 명칭을 붙여 쓰며 ‘센터’는 ‘미들블로커(Middle Blocker)’라고 부른다. 강력한 서브 공격무기인 ‘스파이크 서브(Spike Serve)’는 국제배구에서 ‘점프 서브(Jump Serve)’라고 말한다.

그동안 한국배구가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쓴 것은 배구 종목이 처음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 배구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여자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남자가 각각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배구의 흐름을 한때 주도했었다. 한국배구는 1970년대 이후 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었던 전 일본남녀대표팀 감독이었던 다이마쓰 히로부미(1921~1978)와 마쓰다이라 야스타카(1930~2011)를 초청, 한국남녀대표팀을 지도하게 하면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했다.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남자배구도 1970년대 말 대학생들의 국제대회인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배구는 선진화된 일본 배구 기술과 용어 등을 배우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동안 세계배구판도가 미국, 이탈리아, 브라질 등으로 바뀌면서 국제화 흐름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 뒤처진 한국배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일본식 용어를 답습해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여자배구의 도쿄올림픽 쾌거를 계기로 체계적이고 국제화된 표준 용어를 따르며 선진화된 배구를 향해 달려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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