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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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이 2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짧은 시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여야 후보나 각 정당 입장에서는 그리 넉넉한 시간도 아니다. 특히 뒤를 쫓는 후보나 정당의 경우에는 더 바쁠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대세가 굳어진다면 달리 다른 방도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정치가 이미 ‘진영 대결’로 구조화 된 상황에서 대선은 그 정점에 있는 정치과정이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여야 모두 각 한 사람의 후보로 지지층이 집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당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정권교체를 이루고자 하는 국민의힘은 더 바쁘다. 차기 대선을 목전에 두고서도 집권당을 압도하지 못하는 여론이라면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게다가 유력한 대선주자들의 역량이나 지지율도 집권당보다 밀리고 있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자중지란의 혼선이 반복되고 있다.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힘을 합치고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 그러나 힘을 합치기는커녕 크고 작은 이슈로 연일 난타전이다. 지지층 외연 확대는커녕 그나마 관심을 갖던 지지자들도 등을 돌릴 지경이다. 오죽했으면 국민의힘 일부 초선의원들이 지난 18일 성명서까지 내면서 “국민들이 내년 대선을 포기하라는 질책까지 한다”며 당내 갈등과 분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을까 싶다. 민심의 경고를 그대로 밝힌 대목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이준석 대표가 져야 한다. 큰 기대 속에 뽑힌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이 너무 많다. 당 대표가 그런 소모적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당 전체가 자중지란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먼저 이 대표의 당내 소통이 원만치 않아 보인다. 정당은 우선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당헌·당규에 따라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다. 공당이라면 당 대표도 그 시스템을 통해 리더십을 행사해야 한다. 선을 넘을 경우 당내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시스템만으로만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며, 시스템의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부족분을 채워주고, 그 시스템의 주체인 사람과 교감하는 능력이 곧 리더십이다. 소통이 그 핵심인 이유라 하겠다. 이준석 대표는 바로 이 대목에서 점수를 많이 잃고 있다. 이 대표가 어렵게 결단한 경선준비위가 시작부터 삐걱대더니 당초 예정된 토론회가 무산되고 말았다. 이젠 토론회 대신 발표회를 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김이 비록 강하다고 하더라도 이래서야 당 대표의 권위가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선수가 게임의 룰을 좌지우지 한다면 그 판에서는 대표든 심판관이든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미 공정성에 큰 상처가 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가 이번에는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전화통화 녹취록을 놓고 또 설전이다. 원 전 지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윤석열 전 총장과 관련해 “저거 곧 정리 된다”는 발언을 놓고 ‘주어’가 무엇이냐에 대한 공방이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과의 ‘갈등’을, 원 전 지사는 ‘윤석열’을 말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도 벌써 일주일째 공방전이다. 심지어 녹취록 전부를 공개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당내 대선 주자들은 물론 당 안팎의 인사들까지 뛰어들어 연일 난타전이다. 당 대표가 당내 대선주자와 나눈 얘기가 녹음이 되고, 그 녹취록이 외부에 공개되는 현실은 안타깝다 못해 부끄럽다. 자동녹음도 녹음이다. 앞으로 이 대표와 통화할 때는 녹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통화를 해야 할 판이다. 이미 정치에 대한,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내포돼 있다는 뜻이다. 과연 당 대표로서, 젊은 리더로서 올바른 언행인지는 되짚어 볼 대목이다.

물론 원희룡 전 지사의 처신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정성에 논란이 있다고 하더라도 명색이 당 대표와 중진급 대선주자 간에 있었던 사적 통화다. 다소 불편한 대목이 있더라도 그걸 끄집어내서 언론에 공개하고, 녹취록 전부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지나칠뿐더러 대선 주자로서 과연 적절한 요구인지도 따져볼 일이다. 최근 언론에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면서 ‘반짝 특수’는 챙겼을지 모르나, 원 전 지사의 품격을 아는 많은 사람들에겐 실망도 보통 실망이 아니다. 원 전 지사는 지금껏 작은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윤석열 전 총장의 처신도 짚어 봐야 한다. 정치권 특히 선거판에는 지지율이 모든 걸 말한다지만, 윤 전 총장의 처신은 그 지지율 때문인지 상식 밖의 것이 너무 많다. 이준석 대표는 윤 전 총장의 대선행보를 위한 맞춤형 대표가 아니다. 당 내에는 이미 10여명 이상의 대선주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윤석열 전 총장이 소중하지만 관심권 밖의 대선주자들도 국민의힘 자산이기에 소중한 것은 마찬가지다. 공정성이란 지지율에 따른 편파적 접근이 아니라 대선주자들 모두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이준석 대표가 해야 할 공정성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전 총장은 그런 이준석 대표가 마뜩잖은 모양이다. 20%대 지지율을 보이는 자신과 2%도 안 되는 다른 대선주자들과는 섞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아직 준비도 안됐는데 토론회부터 한다니까 벌써부터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그래서 이 대표와 연일 각을 세우며, ‘탄핵’ 얘기까지 나온 것일까. 아니면 지지율 1, 2위답게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압박의 일환일까. 만약 그렇다면 처음부터 국민의힘에 입당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공정성을 말할 자격도 없다. 당적을 가졌다면 누구든 당원의 한 사람이다. 그 당에도 대표가 있다. 최소한의 당심이라도 얻겠다면 더 이상 이 대표를 흔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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