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not caption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침하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지하로 꺼진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할 일이다. 국내 영화에선 보기 드문 재난 블록버스터 ‘싱크홀’은 평범하게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살고 있는 서민들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갑자기 들이닥친 일촉즉발 재난 상황에서 생존본능과 화합을 통해 긍정 에너지를 제공하며, 코로나로 지치고 힘들어하는 관객들에게 유쾌함과 가족애를 선사한다.

실제 싱크홀은 순식간에 사람이나 집을 삼켜버려 ‘공포의 아가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0년 과테말라에서는 20층 빌딩 높이의 싱크홀이 생겨 3층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 공업단지 앞에서도 퇴근하던 사람들이 지름 10m, 깊이 4m의 구멍에 빠져 5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2016년 부산에서도 가로 5m, 깊이 5m짜리 초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영화 ‘싱크홀’은 11년 만에 마련한 내 집이 1분 만에 싱크홀로 추락하며 벌어지는 재난 코미디다. 우리의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듯이, 영화 ‘싱크홀’에서도 사건은 부지불식간에, 아무런 전조 현상도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듯, 문재인 정부 들어 치솟은 집값에 푸념하는 20대 원룸 거주자, 아들 1명을 키우며 월세살이를 하는 40대, 중소기업 과장으로 11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아낀 돈으로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30대 가장의 소소한 모습을 그려낸다. 영화 속에는 간간이 이들 모두가 느끼는 ‘부동산 블루’를 묘사하며 현실에 직면해 있는 관객들의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 속에는 아무 힘이 없는 절대적 약자들이 먼지에 구르고 물을 맞고 진흙 속에 빠지며 통째로 꺼져버린 빌라 더미에서 필사의 탈출을 시작한다. ‘싱크홀’에서의 캐릭터들은 위기 속에서 배신하고 치이고 본성을 위해 자기만이 살겠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특히 인간들에게 잠재돼 있는 개인주의를 삭제했으며, 주인공과 적대자로 나눠지는 팽팽한 대립의 서스펜스도 끼워 넣지 않았다.

스토리 구조 안에서 미드 포인트를 지나 피치로 넘어가는 지점에 등장인물들은 더욱 협동심을 발휘하며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위층, 아래층에 거주하는 이웃에게도 손을 뻗치며 “같이 살자”고 외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주의 성향을 지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무색해졌으며 오히려 경계하고 사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싱크홀’에서의 이웃들은 유대감을 통해 강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인간의 본성을 악함보다는 선함에 치우쳐 강조한다. ‘싱크홀’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미장센이다. 런닝 타임 내내 돌덩이가 떨어지고 물이 새고 어두움, 칙칙한 빗소리를 등장시키며 상영 내내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이러한 극한 위기 속에서 인간은 약한 존재가 아닌 강인함과 성숙해진 리더십으로 두려움과 위기를 극복해간다.

악당이 없는 재난 영화 ‘싱크홀’은 어떤 기업이나 정치권의 음모도 없고 신파처럼 과한 에피소드들을 포함시키지도 않는다. 재난영화의 교과서 같은 영화로 조건을 갖출 대로 다 갖추면서도 곳곳에 코미디와 가족애를 삽입시켜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이끌어가며 긍정에너지를 제공한다. 약 5개월에 걸쳐 빌라와 각종 편의시설 등 총 20여채의 건물을 지어 대규모 풀 세트를 만들어낸 제작진의 노고가 잘 보이는 영화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