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8일 미얀마 양곤에서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한 산소통에 산소를 채우기 위해 공장 앞에서 기다리는 시민들. (출처: 뉴시스)
지난 7월 28일 미얀마 양곤에서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한 산소통에 산소를 채우기 위해 공장 앞에서 기다리는 시민들. (출처: 뉴시스)

국가 최악의 상황 직면한 미얀마 주민 4인 인터뷰

[천지일보=이솜 기자] 지난 2월 1일. 미얀마 전역의 인터넷이 차단됐다. 뭔가 잘못된 것이었다. 몇 시간 후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고 군사 쿠데타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틀 동안 조용했던 미얀마 거리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민불복종 운동이 시작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미얀마 시민들의 삶은 변했다. 60년 동안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운동을 벌였던 정치 운동가도,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던 학생도, 종교 생활을 하던 신앙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나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신음하고 있으나 작년까지 확진자가 크게 없었던 미얀마의 경우 최근 그 정도가 심각하다. 군부 쿠데타와 항의 시위로 나라가 정지된 가운데 몬순 강우와 뎅기열 등까지 겹쳐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미얀마 주민들. 천지일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망자 중 90%가 산소 부족 원인”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은 다 감염된 것 같다. 여기 양곤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거주 중인 네일(26, 남)은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했다. 맛도 느낄 수 없었고 냄새도 맡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네일은 “알려진 것보다 미얀마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하다”며 “특히 산소 부족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본지와 인터뷰를 한 모든 미얀마 주민들은 ‘산소 부족’을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정치 운동가 민탄툰(45, 남)도 “코로나19 환자 중 사망한 이유의 90%가 산소가 부족해서다”라며 “산소통이 비싸서 못 사고 더러운 산소통을 쓰다가 호흡곤란이 와 숨진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역시 양곤에 거주 중인 마웅마웅딴(50, 남)은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산소를 준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치료할 도리가 없는 것”이라며 “군부 내에서도 서열에 따라 산소를 나눈다고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동남아시아를 강타하면서 이들 나라와 인접해 있는 미얀마도 지난 7월 역시 파도에 휩쓸렸다. 7월 중순 신규 확진자가 7천명까지 오르며 정점을 찍고 최근에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하루 3천~4천명의 확진자가 꾸준히 나오며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하루 400명에 달했던 사망자도 최근 100명대로 줄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여기에 의료진 및 병상 부족에 시민들이 코로나19에 감염돼도 병원 입원이 대부분 거부되면서 집에서 치료하다 숨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어 사망자도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민탄툰은 양곤에 큰 화장터가 4개가 있는데 7월 2째주부터 4째주까지 화장터 1개당 하루에 시신 300~400구가 옮겨졌다고 전했다. 작은 화장터들을 뺀다고 해도 일일 1200~1600명, 2주 동안에만 1만 7천명 이상이 숨진 것인데, 실제 보고된 수는 훨씬 과소평가 됐다는 설명이다. 양곤에는 동네마다 자원 봉사 팀이 있고, 전체 200명이 넘는 봉사자가 있는데 유행 기간 봉사자들은 시신을 옮기느라 쉴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천지일보 2021.8.17
ⓒ천지일보 2021.8.17

◆“쿠데타로 의료 시스템 깨져”

쿠데타, 코로나19는 애초 열악했던 미얀마의 의료시스템을 악화시켰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미얀마의 보건 체제는 폐허가 됐다고 토로했다. 쿠데타 이후 의료진들이 시민불복종운동(CDM)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고, 이에 잡혀가거나 문을 닫게 된 병원들이 수두룩하다. 민탄툰은 “의료시스템이 모두 깨졌다. 약국에서 사는 약도 부르는 게 값이 됐다”며 “얼마 전에 심장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가려고 했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민간정부나 의사들이 만들어 놓은 페이지를 통해 어렵게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 의료기기가 있어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최소한의 치료만 받게 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2018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유운(22)은 “가족과 친구들이 말하기를 최근 병원에서는 거의 환자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며 “병상만 주고 스스로 산소통을 가져와야 하는 경우도 있고 군부가 산소를 독점했기 때문에 군부 측에 합류하는 조건으로 군용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병원에 입원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마웅마웅딴은 현재 코로나19에 걸린 아버지를 병원에서 간호하고 있는데 병원 내 환경 또한 열악하다고 전했다. 마웅마웅딴은 “응급실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죽고 만약 응급실에서 양성 판정을 받으면 병상에도, 집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린다”며 “병원에도 의료진이 거의 없어 아주 급한 환자들에 대해서만 겨우 응급처치만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주민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코로나19 백신 거래 장면이 영상에 포착됐다. 지난 8일 미얀마 네티즌의 페이스북에 공개된 영상에는 아이스박스(맨 왼쪽)에 담긴 백신을 얼음이 담긴 그릇(오른쪽)에 옮겨 파는 모습이 담겼다. 백신 병에 적힌 이름의 철자조차 틀려 가짜백신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출처: 미얀마 네티즌 페이스북 영상 캡처)
미얀마 주민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코로나19 백신 거래 장면이 영상에 포착됐다. 지난 8일 미얀마 네티즌의 페이스북에 공개된 영상에는 아이스박스(맨 왼쪽)에 담긴 백신을 얼음이 담긴 그릇(오른쪽)에 옮겨 파는 모습이 담겼다. 백신 병에 적힌 이름의 철자조차 틀려 가짜백신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출처: 미얀마 네티즌 페이스북 영상 캡처)

◆“가짜 백신 매매… 의료 상식 부재”

네일은 코로나19에 대한 가짜뉴스 때문에 숨진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에서 잘못된 정보들이 퍼지고 있다. 최근엔 백신 보급이 늦어지자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백신이 주민들 사이에서 매매되는 장면까지 포착됐다.

지난 8일 한 미얀마 주민의 페이스북에는 백신을 파는 사람이 아이스박스에서 코비쉴드 백신을 파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개재됐다. 코비쉴드는 아스트라제네카 라이선스를 얻어 인도가 생산한 백신이다. 적정 온도가 아닌 아이스박스에 보관하는 것뿐만 아니라 백신 겉면에 적힌 코비쉴드(covishield)의 철자가 틀린 것이 보이면서 가짜 백신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네일은 “페이스북에서 백신을 팔기도 하고 몇몇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문제는 교육을 받지 못한 주민들의 의료 상식에 대한 부재”라고 지적했다.

병원이나 약국에 가지 못하는 주민들은 서로를 돕고 있다. 유운은 “집에서 치료를 하는 분들은 의사들과 통화로 상담하거나 페이스북 등에 자기 상황을 알려 도움을 받기도 한다”며 “그러나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숨진 지 사흘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민탄툰은 “음식, 약 등을 구하는 사람들은 집 앞에 하얀색 또는 노란색 깃발을 거는데, 이를 본 주민들이 서로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골은 도시보다 코로나19 상황이 더 낫지만 몬순 시즌으로 연일 내리는 폭우와 이로 인한 홍수, 산사태, 뎅기열 확산에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

민탄툰은 “예전부터 뎅기열 문제는 심각해서 수치 정부는 NGO 등과 이를 통제해왔다”며 “쿠데타 이후 모든 공중보건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이에 뎅기열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들도 다시 몇 년 전 심각했던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미얀마 남동부 미야와디에 몬순 홍수가 덮쳐 구조대원들이 어린 아이를 구조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달 29일 미얀마 남동부 미야와디에 몬순 홍수가 덮쳐 구조대원들이 어린 아이를 구조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얀마인들 모두 절망감 커”

이들은 공중보건 상황뿐 아니라 모든 것들이 60년 전으로 후퇴 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운은 “나라가 군부 독재 시절인 60년 전으로 돌아갔다”며 “자신의 통장 안의 돈을 꺼내려면 추천서까지 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교육 체계도 상당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18세에 산 속 시민 군대에 들어가 군사정권 반대 운동을 해 온 민탄툰은 “태국도 쿠데타가 여러번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경제·의료 체계의 기초가 탄탄했기 때문에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며 “영국 식민지 이후 60년 동안 군사정권 하에 있던 미얀마는 이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통해 경제와 정치가 나아지려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기초가 지어지려는 상황에서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몇십년 전보다 나라는 더욱 퇴보하게 됐다”고 평했다.

시민들의 좌절감도 반복됐다.

네일은 현재의 상황을 두고 “절망스럽다”며 “충격도 크지만 무엇보다 희망을 잃었고, 우리가 이전의 생활을 찾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5월 유혈시위가 한창이었을 때 군부의 계엄령으로 밖에 제대로 다닐 수도 없었다”며 “매일 시위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죽은지를 확인한 후 집에만 있었다.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가 않는다. 이런 모든 일을 겪자 뭔가 무거운 것이 내 안에서 나를 짓눌렀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었다. 미얀마인들 모두가 나와 비슷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네일은 또한 “나라 전체 상황이 안 좋다보니 일부는 직장을 잃고 소득이 전혀 없다”며 “당신이라면 전염병 대유행과 군부 쿠데타를 동시에 겪으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네일은 내년 일본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다. 가능하면 일본에서 일을 구해 정착하고 싶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모든 게 불투명하다고 네일은 덧붙였다.

군부는 최근 비상통치 기간을 쿠데타 직후 발표한 1년에서 최소 2년 6개월 더 연장했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지난 1일 2023년 8월까지 국가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총선을 치르겠다고 밝혔으나 이번 약속 역시 파기될 가능성이 크다.

2월 쿠데타 후 시민 940여명 사망하고 5400여명이 구금을 당한 가운데 지난 3월 6일 양곤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2월 쿠데타 후 시민 940여명 사망하고 5400여명이 구금을 당한 가운데 지난 3월 6일 양곤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끝나지 않은 삶 “죽도록 싸울 것”

군부의 심각한 만행 속에도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마웅마웅딴은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이라며 “그러니 모든 힘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에서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고 알고 있다. 한국에서 치료제가 꼭 나와서 미얀마에서도 하루 속히 많은 사람들이 살길 바란다”고 전했다.

2008~2012년 정치범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민탄툰은 군부 반대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17년형을 받았다가 테인 세인 대통령 시절 정치범 사면으로 풀려난 민탄툰은 이번에 또 체포되면 지난번 채우지 못한 형기까지 살아야 한다. 그는 석방 후 주소 등 신변 정보를 모두 바꿔 이번 쿠데타 때 잡히지 않았으나 위험이 커 숨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

민탄툰은 “처음 군부 정권 대항을 위해 산에 들어갔을 때 내 미래가 사라진 것 같아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었다”며 “지금 당시의 나와 같은 나이의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겪어봤고 이에 군부를 반대하기 위해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도 포기하고 산에 들어가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젊은 친구들도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1988년 당시에는 우리 전(前) 세대가 군부를 막지 못했기 때문에 당한 것이고 우리 세대가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가 피해를 입었다”며 “이를 다음 세대에 또 대물림할 수는 없기에 현재 죽도록 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 운동가들에게 있어 현재 중요한 사안은 국제사회가 군부가 아닌 국민통합정부(NUG)를 미얀마 공식외교채널로 인정하는 것이다. 민탄툰은 “한국 정부가 NUG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는 데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의 활동가인 유운은 “군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강해지고 그들이 할 일을 계획적으로 완성하고 있다”며 “전처럼 대규모 시위도 못하고 언론 통제 때문에 소식이 줄어 미얀마 사람들이 포기했나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 계속 싸우고 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 이렇게까지 희생했으니 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번 민주화 운동은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한국 분들도 미얀마 상황을 계속 관심 가져주시고 지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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