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 6자재개안 탄력..'북미대화'로 중심이동
남북 대화흐름도 추동..南北 유연한 접근이 정세 키

(발리=연합뉴스) 인도네시아 발리를 무대로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이 22일 성사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라는 다자 외교공간에서 열리는 회동이지만 비핵화를 의제로 개최되는 남북 간 공식회담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흐름에서 갖는 의미와 무게감은 매우 커 보인다.

미ㆍ중을 중심으로 대화국면을 추동하려는 큰 틀의 흐름 속에서 교착된 6자회담 재개흐름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숨통을 트는 중대한 정세전환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일단 남북간 6자회담 수석대표가 회담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은 2008년 12월 중국 베이징(北京) 수석대표 회동 이후 2년7개월만이다.

특히 남북이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기간에 수석대표 회동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자회담에 종속된 양자회동이 아니라 남과 북이 독자적인 계기로 핵문제를 논의하는 회담이라는 의미가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이번 회동을 '남북한 간 최초의 비핵화 회담'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보다 중요한 의미는 현재의 6자회담 재개 흐름에 중요한 돌파구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다. 6자 내부의 공감대를 형성해온 3단계 회담 재개방안(남북 비핵화 회담→북미접촉→6자회담 재개)의 첫 단추가 풀리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북 비핵화 회담 개최문제는 남북한의 시각차가 극명히 엇갈리면서 난항을 거듭해왔다. 남측으로서는 남북간 핵문제를 논의하는 장(場)을 만들고 3단계 접근을 통한 6자회담 재개흐름의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남북 비핵화 회담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북측으로서는 핵카드를 대미협상용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남북대화를 '우회'해 북미대화로 '직행'하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여기에 우리측이 천안함ㆍ연평도 사과와 비핵화 선행조치를 강한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데 대한 강한 거부감도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간 비핵화 회담이 성사된 것은 대화국면 재개를 추동하려는 미ㆍ중의 전략적 협력흐름 속에서 남북이 유연한 접근 태도를 보인 것이 주된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ㆍ중은 북한의 추가 도발을 방지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전략적 목표 아래 대화국면을 조성하는 쪽으로 남과 북을 '독려'해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이 지난 6월 초 남북대화 거부를 선언한 이후 천안함ㆍ연평도 문제와 비핵화 트랙을 본격적으로 분리해가며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에 북측은 남북대화 선언을 거부하면서도 비핵화와 관련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남북 간 '외(외교통상부)-외(외무성) 채널'을 열어놨다. 이후 우리 측이 유연성을 발휘하며 지속적 '대화 시그널'을 보내자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북핵 협상라인의 실세인 리용호 부상을 6자회담 수석대표로 임명하고 ARF가 열리는 발리에 파견했다.

이번 회동의 성사과정에서는 미ㆍ중의 보이지 않는 힘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0일 저녁 일본 스기야마 신스케(彬山晉輔)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함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만나 입장을 조율했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북한 리용호 부상은 주초부터 베이징에 머물며 중국 당국자들을 만나 대응방향을 숙의했다.

22일 오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회담을 열어 조속한 대화재개에 의견일치를 본 것은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남북이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6자회담 재개국면으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회동이 남북 비핵화 회담으로 성격이 규정됨에 따라 다음 단계인 북미대화 국면으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 선(先) 남북대화 원칙을 고수해온 우리 정부도 남북대화-북미대화 병행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오늘 협의결과를 내부적으로 소화하고 다른 관련국들과도 협의해보겠다"고 말해, 병행을 용인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대북 식량지원 재개가 당장의 현안으로 부상해있어 북미는 조속히 대화 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에 따라 북한 김계관 외무상 제1부상 등 북한 고위급 인사가 미국 본토를 방문하는 형식으로 북미대화가 성사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남북한 비핵화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경색된 남북관계의 흐름에도 긍정적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6자회담 재개 흐름이 남북대화를 추동하는 식으로 한반도 정세가 '선순환'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로서는 한반도 정세운용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6자회담 재개 흐름의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의 전환도 모색할 수 있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8.15 광복절을 맞아 남북관계와 관련한 새로운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남북 정상회담 추진이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동으로 인해 앞으로 6자회담 재개흐름이 순탄할 것으로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남북한 간 시각이 다른데다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을 둘러싼 남북 간 동상이몽이 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회담은 양측간 이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해내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합의를 도출하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았으며 서로의 입장을 개진해 이해를 높이고 서로 간 인간적 신뢰를 높이는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6자회담 재개흐름을 뒤흔들 남북간의 쟁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측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확인을 위한 비핵화 선행조치를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왔다는 점에서 이를 어떤 식으로 정리해낼지가 주목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관전포인트는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어떤 식으로 병용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해내기 위한 역할분담을 하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1,2단계(남북ㆍ북미대화)를 망라해 비핵화 이슈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의 전반적 흐름은 '대화'를 향한 대전환의 길목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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