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폭력 난무한 조직 분위기 바꿔가야”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상처를 주거나 괴롭히고자 상대방에게 내뱉은 말이 우울증은 물론 자살과 충동 살인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언어폭력’이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언어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대등하거나 더 심각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언어폭력은 형태가 있는 물리적 폭력과 달리 형태가 없어 치료가 쉽지 않고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조차 갖기 어렵다. 결국 피해자들은 언어적 폭력으로 생긴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고 가게 된다. 본지는 전문가들을 통해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했다.

[천지일보=김예슬·김충만 기자] 최근 군(軍) 내 사건 사고의 원인으로 언어폭력이 떠오르면서 ‘언어폭력’의 심각성과 해결 모색이 시급해졌다.

#뚱뚱한 병사에게 ‘넌 돼지니까 밥 먹지마”라고 말하며 실제 밥을 못 먹게 함.
#코를 곤다며 잠을 못 자게하고 구타를 하는 동시에 온갖 욕설을 퍼부음.
#선임들의 잦은 지적과 갈굼.

이는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가 지난 14일 밝힌 해병대 내 언어폭력의 사례다. 군에서는 2010년부터 언어폭력 근절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언어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육‧해‧공군의 가혹행위 비율은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지만 언어폭력은 28%로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문제로 탈영 또는 자살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35%가 넘는다는 결과도 있다”면서 “이는 부대 내에서 언어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과 교육체계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꼬집었다.

언어폭력이 사고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05년 선임들의 언어폭력에 시달린 김모(22) 일병이 자신의 소초 생활관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사망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발생한 군 내 자살과 총기사건 등의 발단도 이 같은 원인과 무관하지 않아 ‘언어폭력’은 군 병영문화 개선과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언어폭력은 군뿐 아니라 가정과 회사 등 각 조직 내에서 오래전부터 발생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언어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살과 살인 등 범죄행위의 원인이 된다.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전우영 교수는 “순서만 다를 뿐이다. 물리적 폭력은 몸의 상처 다음에 심리적 상처가 생기지만 언어적 폭력은 마음의 상처를 겪고 난 다음에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병이 생기고 심지어는 범죄행위까지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언어폭력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관이 없어 피해자 입장에서는 모욕, 고통의 순간을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압박이 크고 극복되지 않을 경우 당시 상황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새기게 되는 것조차 계속해서 폭력을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게 전 교수의 말이다.

전 교수는 “가해자가 폭언한 뒤 ‘나는 뒤끝이 없다’는 식으로 상황을 수습한다 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계속 피해자가 힘들거나 괴롭다면 언어폭력을 계속 당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개선해 가야 한다.

그러나 문화가 개선되기까지는 계속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심리치료실 등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조직 내에서의 언어폭력은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집단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곽 교수는 “언어는 습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고치기 더 어렵다”며 언어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요즘에 중학생들이 굉장히 욕을 많이 하는데 이 친구들은 이게 욕이라고 생각안하고 ‘쌍시옷(ㅆ)’이 입에 붙어있다. 이러한 것은 욕도 아니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습관화돼 있어서 잘못 인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언어는 생각하는 것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계속 부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말을 사용하면 굉장히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를 형성시킨다. 상담할 때 언어부터 고치게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곽 교수는 “각자가 언어를 조심해서 사용하는 게 중요하고 주위에서는 어떤 게 언어폭력인지 자각할 수 있도록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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