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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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정책에 발맞춘다는 이름 하에 산림청이 추진하는 ‘30억 그루 나무 심기 프로젝트’가 사실은 ‘30억 그루 나무 베기 프로젝트’임이 밝혀졌지만 아직 산림청이 이를 공식 중단하거나 폐지한다는 소식은 없다. ‘2050 탄소중립 산림부문 추진전략’이란 이름으로 계획되고 있는 이 사업의 핵심이 ‘30년 이상 된 나무는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베어낸 뒤 그 자리에 어린나무를 심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라는 게 알려진 후 이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비판이 일파만파 커지고만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숲의 주요 구성원인 30~40년 수령의 기존 나무를 싸그리 베어버리고 어린 묘목을 새로 심는 일이 탄소배출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숲보다 탄소배출을 42배까지 늘린다는 점, 한국의 벌기령이 유럽의 숲 선진국보다 턱없이 낮고, 이런 나무를 베면 제대로 된 목재로 쓸 수도 없다는 사실, 이로 인해 베어진 나무의 90% 가까이가 조각과 가루, 펄프, 땔감 등 가장 가치가 낮은 상태로 쓰인다는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해명도 없다.

더군다나 산림청은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탄소저감 계획에 나무와 표토에 축적돼 있는 탄소량은 아예 계산도 하지 않고, 임도를 놓고, 나무를 베고, 운송하고, 가공하고, 목재연료를 태울 때 발생할 막대한 탄소 배출량 또한 어느 곳에도 반영하지 않고, 또한 벌채함으로써 사라질 수많은 생물종에 대한 사전 생태조사 계획 및 그 가치에 대한 평가도 없다.

약 5억년 전, 고착생활을 택한 식물은 살기위해 땅, 공기, 태양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어내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리하여 식물은 폐가 없어도 숨을 쉴 수 있고 입이나 위장이 없어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뇌가 없어도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진화했다.

나무는 엽록소를 통해 햇빛을 받아들이고 유기물을 합성한다. 지구상 생물 가운데 오직 식물만이 무기물을 유기물로 합성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식물이 가진 엽록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광합성’인데 이를 통해 얻은 에너지는 나무가 생장을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쓰인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포도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산소는 필요 없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나무가 만드는 산소는 나무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쓰레기인 셈이다. 결국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나무가 버린 이 쓰레기로 생존을 이어온 것이다.

나무의 목질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주원료로 이용해 만든 화합물이다. 나무 종에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목질의 구성은 중량 기준 탄소 50%, 산소 42%, 수소 6%, 질소 1%, 기타 1%로 돼 있다. 즉 나무 목질은 중량 기준 92%가 탄소와 산소로 구성돼 있다. 흔히 숲이 불탄다는 건 화학적으로는 나무가 성장하면서 잡아둔 이산화탄소가 다시 변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합류한다는 얘기다. 지구의 숲들이 이렇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바이오매스를 만들어내는 총량은 연간 1050억톤에 이른다고 한다. 나무는 대기중 탄소를 흡수해 자기 신체조직으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햇빛 에너지가 나무 몸속에 축적되는 것이다. 태양이 100의 에너지를 주면 나무가 몸속에 축적하는 에너지는 2 정도라고 한다. 나무에 축적된 바이오매스 에너지량은 같은 부피 석유나 석탄의 50%에 이른다.

인류의 주요 에너지원인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연료는 모두 4억년 전 지구에 살았던 식물체의 화석이다. 4억년 전의 햇빛 에너지가 축적된 것이다. 4억년 전 지구 대기의 80%는 이산화탄소였다. 화석이 된 나무들은 80%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포도당으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산소를 만들어 지금의 지구 대기 환경을 만든 우리 조상들인 것이다. 그 조상들을 땅속에서 꺼내 연료로 사용하고 자동차를 굴리면서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게 우리 현생 인류이다. 그런데 이제는 온실가스니 기후변화니 불평까지 하면서 살아 있는 후손까지 마구 베어버리려 하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생전에 바오밥나무가 죽는 걸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짧게는 천 년, 길게는 1만년까지 사는 바오밥나무를 아프리카인들은 ‘생명의 나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인간과 뭇 생명들에게 아낌없이 주던 바오밥나무가 최근 시름시름 앓고 죽어간다고 한다. 바오밥나무도 기후재난의 화마를 비껴가지 못한 탓이다. 바오밥나무의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수천 수만 년 동안 지구생태계를 유지해왔던 저 한 그루 숲의 죽음 앞에서, 죽어가는 생명의 나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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