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석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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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중국과 미국,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CBDC) 연구와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세계 65개국의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약 85%가 CBDC 도입 여부와 장단점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CBDC란 기존 중앙은행 내 지준예치금이나 결제성 예금과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새로운 전자적 형태의 화폐다.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와는 달리 가격 변동성이 없어 현금처럼 지급 수단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가치를 담보하기 때문에 CBDC는 법정통화의 지위를 얻게 된다.

중국은 이미 2019년 CBDC 발행을 공식 선언했다.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통해 세계 주요 기축통화인 달러와 유로화, 엔화에 도전하려는 의도다. 지난해에는 선전시에서 5만명에게 200위안의 디지털 위안화를 지급하고 시범 사용을 시작했다. 2022년 상용화가 목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광범위한 조사를 거쳐 9월 초 CBDC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도 CBDC 도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화 도입을 전제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일본 중앙은행도 지난 4월 금융 시스템에 CBDC 발행과 상호 작용을 하는 실증 시험을 시작했다. 이들 국가 이외에도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CBDC 도입을 공식화했고 호주, 노르웨이 등도 CBDC 도입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CBDC에 대한 세계 각국 경쟁이 뜨거워지자 이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세계 3대 금융기관은 “CBDC의 영향력이 국경을 초월하는데도 각국 중앙은행들이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며 효율적인 기술 통합을 기반으로 CBDC의 국경 간 네트워크를 제안했다. “CBDC를 특정 국가 안에서 활용하는 것보다 글로벌 활용은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조달(CFT) 방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CBDC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의 관계이다. CBDC가 가상화폐를 완전히 몰아낼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공존한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져 있다.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미국에 디지털화폐(디지털달러)가 생긴다면 가상화폐는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 후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암호화폐의 가격은 한 때 폭락했다.

반면 가상화폐 거래소 제미니 공동창업자 타일러 윙클보스는 “달러가 금을 쓸모없게 만들지 않는 것처럼 디지털 달러는 비트코인을 쓸모없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CBDC의 등장으로 시중은행 예금이 줄면서 수익성 약화로 이어져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세계 각국이 잇달아 중앙은행 CBDC 도입을 선언한 가운데 한국에서는 CBDC 도입이 국민 실생활을 크게 뒤바꿀 변화인 만큼 안전성에 중점을 두고 점진적으로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카카오 컨소시엄을 시범사업자로 선정했고 연말까지 CBDC 시범(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하고 테스트부터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CBDC 도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술 개발과 도입 시의 장단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의 연구와 제도 마련 등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도입 시기는 국제간 공조 문제, 가상화폐에 대한 영향, 시중은행의 수익성 등 제반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 후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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