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문화 외교는 나라와 나라 간 문화의 다리로 연결돼야 합니다. 무조건 퍼내기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문화가 서로 오가도록 해야 하죠.” ⓒ천지일보(뉴스천지)

[오늘의 저자] 소설 ‘다리’의 저자 조재철 작가

다리와 사랑에 빠진 남자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다리는 떨어진 것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축제가 수행하는 역할과 비슷합니다. 축제는 원초적 고독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시적일 수 있으나 일체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합니다. 다리는 곧 여행이기도 합니다. 축제에 참가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정을 느끼기 위해서 고대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했습니다.”

다리를 얼마나 좋아하면, 자신의 첫 장편 소설 제목을 ‘다리’라고 지을 정도다. 깊고 푸른 강물 위로 두 대륙을 튼튼하게 연결한 다리가 멋있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은 있겠으나, 이 사람처럼 다리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 또 있을까. 고향 남해에 있는 작은 마을다리부터 남해대교, 한강대교, 터키의 갈라타 다리까지. 그의 소설은 우리나라와 세계의 다리를 따라 이어진다.

외교통상부 조재철 문화예술협력과장은 외교관이란 직업 때문에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바쁜 일정 속에서 틈틈이 글 쓰는 일을 병행해 왔다.

그의 첫 장편소설 ‘다리’가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는 첫 장편 소설을 출간하기 전까지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 실명으로 낸 첫 소설에도 그의 이력을 밝히지 않았고 책 내용 중에도 ‘외교’라는 글자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 ‘다리’는 고향 남해와 국악에 대한 얘기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조 과장의 고향 남해에 우뚝이 서있는 다리처럼 우직하면서도 사춘기 소년의 감성을 담은 듯 순수하다.

그러한 그의 글에 매료돼 응원을 보내는 독자들 때문에라도 그는 소설을 생각하면 마음이 늘 설레는 눈치다. 앞으로 발표할 소설도 건설하고 세운다는 ‘다리’의 연장선상의 이야기라고 살짝 귀띔한다.

다리가 된 남자

그가 맡고 있는 외교통상부 문화예술원협력과는 한국의 음악‧미술‧문학 등 우리 문화예술전반의 해외교류와 한식 세계화 및 관광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국제화 업무지원을 담당 하고 있다. 축제와 공연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에게 그러한 업무는 서울과 지방의 축제를 더욱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듯했다.

“세계 유명 축제를 둘러봐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축제는 많지 않아요. 국민이나 지역민들의 단합과 홍보를 위해 세워진 것이 많죠. 축제의 본질은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하나 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직업상 해외에 나가 한국을 알리는 ‘다리’가 된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소개하는지 묻자 “‘한국 문화는 곧 당신들의 문화’라고 소개한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홍보방식은 상대에게 우리가 상대국가와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는데서 출발한다. 한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조 과장에게 속속 찾아와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긴 시간을 보낸 조 과장은 한류의 실체인 한국 사람들의 저력과 끈기를 잘 알고 있다. 그는 해외 근무 시 정무‧경제업무와 동시에 문화홍보담당을 겸임했는데 일을 하면서 특히 음악분야에서 우리 민족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 조재철 작가는 소설 <다리>에 고향 남해와 국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비단 나의 나라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생활 환경적 요소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문화 외교는 나라와 나라 간 문화의 다리로 연결돼야 합니다. 무조건 퍼내기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문화가 서로 오가도록 해야 하죠.”

그는 외교통상부 주최로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열린 아프리카문화축제 행사 기획을 담당했다. 조 과장은 공연, 사진전시, 조각, 영화상영, 문화 설명회를 통해 이뤄진 이번 행사를 통해 관객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어두운 아프리카가 아닌 활기차고 희망찬 아프리카를 떠올리기를 바랐다.

그는 이 공연을 통해 외국의 정치‧경제를 아는 것만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과장은 ‘다리’의 주인공 지훈처럼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글을 읽다보니 그런 글을 쓰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지훈의 대사처럼 그도 작가가 되는 꿈은 포기한 적이 없다.

“제가 쓰는 글은 인간성의 순수성을 드러내고 사람 간의 관계를 건설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제가 자유인이 됐을 그때는 아주 매운 비판의 글을 선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는 다시 말을 바꾼다. “제가 고향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나이 50이 되면 고향인 남해에 돌아가 살면서 동화작가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는데 아마 그때도 따뜻한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소설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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