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포도모양 덩굴 역시 영기문

꽃·식물 전개과정 영화·덩굴화

포도 표현, 강력한 무량 보주

무량보주에서 주전자가 화생

 

'고려청자 상감 무량 보주를 받든 동자문 주전자와 승반'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고려청자 상감 무량 보주를 받든 동자문 주전자와 승반'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제7회에서 주전자와 승반이 어떤 관계에 있 는지 밝힌 바 있다. 학계에서는 주전자와 승반을 2점으로 세고 있다. 그러나 주전자만으로는 불완전하다. 주전자 자체의 맨 밑부분에 주전자를 화생시키는 영기문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음 회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승반만으로도 역시 불완전하다. 용도가 애매하다. 그러나 두 그릇이 만나면 한 벌이 되어 마침내 완전한 매우 아름다운 그릇이 되고 상징성은 더욱 높아진다. 즉 불완전한 그릇 둘이 만나 완전한 그릇이 된다.

영기화생의 광경도 특히 장엄하다. 그러므로 두 점이 아니라 한 점으로 세야 한다. 이 고려청자는 앞서 다룬 작품과 같은 형태와 같은 상징을 띠고 있어서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앞선 작품은 매우 어려운 기법으로 문양을 입체적으로 투각하여 안의 그릇을 공간을 두고 감싸고 있어서 그 예가 희귀하다. 이 경우는 밀착하되 기법이 상감으로 변하여 문양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이제 바야흐로 상감기법의 시대가 온 것이다.

또 다른 점은 연꽃모양 덩굴과 포도모양 덩굴을 표현한 점이다. 앞서 연꽃모양은 우선 현실에서는 덩굴을 이루지 않는다. 반면에 포도모양은 덩굴을 짓고 있다. 이런 문양은 당초문-덩굴 문양-만초문 등으로 불린다. 필자는 참다못해 한국미술사학회에서 2년 전에 <당초문의 신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는데 당초문이란 것이 단순한 아무 의미 없는 덩굴이 아니라 만물을 화생시키는 영기문임을 증명해 보였다.

연꽃모양이나 연잎모양이 각각 연꽃이나 연잎이 아니고 문양화해서 영기문으로 만들었듯이, 이 작품에서도 포도나무 모양을 문양화하여 포도나무 열매나 포도나무 잎을 변형시키되 강력한 연이은 제1영기싹 문양이란 골격에서 각각 생기게 하여 도자기를 영기화생시키고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도자기의 문양에는 현실에서 보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이 포도나무도 포도나무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조형예술의 세계에서는 모든 꽃이나 식물이나 식물의 전개과정을 모두 영화시키고 덩굴화한다. 덩굴화한다는 것 역시 영화시키며 만물을 생성케 한다는 말이다.

이런 진리는 한 번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연재를 하면서 그것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여러분도 노력해야 한다. 한 번 읽고는 곧 잊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에 베풀어진 문양을 보면 자연에서 보듯 혼란스럽지 않고 질서정연한 전개가 이루어져서 이른바 영화가 이루어져 있는데 연이은 제1영기싹(이미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찾아보기 바란다)으로 골격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표현된 포도송이는 붉은색으로 나타냈다.

포도가 익으면 붉은색을 띠므로 포도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면 포도나무 잎은 어떠한가. 실제로 관찰하여 본 잎을 보면 전혀 다르다. 만일 영화시키는 원리에 의해 조형이 변형되었다면 이미 현실에서 본 포도가 아니고 영기문이 되어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어 고려청자를 영기화생시키고 있지 않은가. 현실에서 보는 포도나무는 고려청자를 화생시키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문양의 조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고려청자는 음각하거나 양각하거나 상감하거나 언제나 문양화가 현실에서 보는 형태와 전혀 다르게 이루어지지만, 조선백자는 현실에서 본 것과 같이 사실적으로 붓으로 그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의 것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고려청자를 100% 파악하지 못하면 조선백자의 문양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도 1-2(좌)와 도 1-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도 1-2(좌)와 도 1-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자연의 포도나무 잎 모양(좌) 도 1-4와 도 1-5(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자연의 포도나무 잎 모양(좌) 도 1-4와 도 1-5(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그러면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서 포도나무가 각각 어떻게 문양화, 즉 영기문화되어 도자기를 화생시키는지 분석해 보자. <고려청자 상감 무량 보주를 받든 동자문 주전자와 승반>에서는 승반에도 포도모양이 상감되어 있다. 전체가 온통 포도문이다(도 1-1). 포도알 표현에 네 가지가 있는데 차례로 살펴보자.

첫 예를 채색분석해 보면 포도모양은 실제 자연의 포도문과 전혀 다르고 포도나무 잎도 변형이 극도로 이루어져 실제의 잎과 전혀 다르다(도 1-2, 1-3, 1-4, 1-5). 고려청자는 한 면만 보면 안 된다. 불상조각품에서처럼 모든 면을 봐야 한다.

포도도 둥근 굵은 테 안에 동채(銅彩)로 포도알을 터치하여 놓고 검은 점들을 무질서 하게 점찍어서 포도를 표현하였다. 둥근 테 안에서 포도알이 나오는 형상을 띠어서 자연의 포도알과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마치 보주 안에서 보주가 나오는 형상이다. 포도나무 잎은 크게 변형시키며 잎맥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빙렬로 보였으나 잎맥이었다.

 

도 2-1(좌)과 도 2-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도 2-1(좌)과 도 2-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이 글에서는 반대편도 보기로 한다(도 2-1, 2-2). 이 경우는 포도 표현 방법이 다르다. 굵은 둥근 흰색의 둥근 테가 있고 그 안에 다시 검은 굵은 테가 있고 그 안에 동채로 붉은색을 내는 포도를 표현하려 했다. 포도알에는 무질서한 검은 점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포도송이들은 모두 나뭇가지가 아니라 덩굴손에 매달려 있다. 덩굴손은 가지가 뻗어가는 방향을 잡아 주고 나무의 평형을 잡아 주는 것이어서 포도송이가 달릴 수 없다. 조형예술품에서는 덩굴손을 영기문으로 이용하여 그 덩굴손에서 포도송이가 매달리는 부조리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도 3-1(좌)과 도 3-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도 3-1(좌)과 도 3-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그다음 표형의 윗부분의 포도 표현을 보면 또 다르다(도 3-1, 3-2). 굵은 하얀 테가 있고, 그 안에 엷은 붉은색의 포도알을 표현하고 다시 제법 큰 둥근 검은 점을 표현하여 다른 포도 표현과 다르다.

 

도 4-1(좌)과 도 4-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도 4-1(좌)과 도 4-2(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그다음 승반에 표현된 포도를 살펴보자(도 4-1. 4-2). 여기에서는 굵은 하얀 테에 붉은색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큰 둥근 점만 있다. 이렇게 포도 표현이 다른 까닭은 포도가 아니고 보주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까닭이다. 매우 강력한 보주 표현이다. 그런 강력한 영기문에서 주전자와 승반이 화생하는 것이다. 이 승반에는 입가에 수술 표현이 없다. 강력한 무량보주가 표현되어 있으므로 따로 나타내지 않아도 된다.

 

전체를 펼친 그림(도 5-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전체를 펼친 그림(도 5-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도 5-1을 단순화시킨 것(도 5-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도 5-1을 단순화시킨 것(도 5-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전체를 그려보면 매우 흥미 있는 영기문의 전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면 필자가 발견한 조형언어가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제 5-1, 5-2). 연이은 제1영 기싹이 길게 연이어 전개하는 조형이 근본적인 요체이고 그 밖의 것은 허상일 뿐이다.

연이은 제1영기싹에서 실은 보주들이 화생하는데 이런 진리는 수많은 영기문을 채색분석해 보면 터득할 수 있다. 포도가 아니고 보주다. 포도송이는 무량보주다. 그러므로 무량보주에서 주전자라는 고려청자가 화생하는 것이다.

 

순서대로 아기 예수가 포도송이를 들고 있다(도 6-1). 아기 예수가 석류를 들고 있다(도 6-2). 아기 예수가 사과를 들고 있다(도 6-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순서대로 아기 예수가 포도송이를 들고 있다(도 6-1). 아기 예수가 석류를 들고 있다(도 6-2). 아기 예수가 사과를 들고 있다(도 6-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따라서 서양회화에 표현된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에서 아기 예수가 들고 있는 포도송이는 무량보주이다(도 6-1). 그런데 아기 예수가 석류를 들고 있는 그림도 있다(도 6-2). 게다가 사과를 들고 있는 예도 있다(도 6-3). 일체의 열매는 승화되어 보주가 된다는 필자의 지론을 받쳐주고 있지 않은가.

 

삼국시대의 백제 불상 가운데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도 7).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삼국시대의 백제 불상 가운데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도 7).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1

서양 학자들이 이런 그림의 상징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보주가 무엇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백제 불상 가운데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도 7).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높이 올리는 까닭은 그 보주가 중요한 까닭이다. 보주는 보석이 아니다. 보주야말로 동서양 미술을 풀어낼 수 있는 막중한 열쇠지만 아무도 오랜 세월 걸려 배우려는 사람이 없구나. 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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