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조선(朝鮮)의 개혁 군주(改革君主) 정조(正祖)의 생애(生涯) (1)
[문화칼럼] 조선(朝鮮)의 개혁 군주(改革君主) 정조(正祖)의 생애(生涯)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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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조선왕조(朝鮮王朝) 제22대 왕 정조(正祖)가 승하(昇遐)한 지 어느 덧 220년이 넘었는데, 개혁 군주(改革君主)로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원대한 포부를 완성하지 못한 채 49세에 승하 했는데 본 칼럼에서 그의 생애(生涯)를 소개한다.

그런데 정조의 생애를 소개하기 전에 그의 조부(祖父)로서 왕위(王位)를 계승(繼承)하는데 있어서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영조(英祖)의 생애를 살펴본다. 영조는 1694(숙종 20)년 숙종(肅宗)과 최숙빈(崔淑嬪) 사이에 탄생했으며, 6세에 연잉군(延礽君)으로 봉(封)해졌으며, 1720(숙종 46)년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景宗)이 즉위(卽位)했다.

당시 노론은 장희빈(張禧嬪)의 소생(所生)인 경종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대안(代案)으로 연잉군을 지지했으며, 이에 반하여 소론은 경종을 지지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에서 경종은 1721(경종 1)년 노론의 압력으로 연잉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冊封)했으며, 또한 노론은 대리청정(代理聽政)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노론측의 움직임에 소론이 일대 반격을 가하여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역모로 몰아서 노론의 4대신 즉 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頤命),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연루돼 화를 입었으니 이 사건을 신임사화(辛壬士禍)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연잉군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경종의 선처(善處)로 큰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으니 경종이 재위한 지 불과 4년 만에 의문의 승하를 했다. 이와 관련해 경종이 승하 하면서 왕세제인 연잉군이 왕위를 계승했으니 그가 바로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위했던 영조였던 것이다.

영조는 즉위하면서 당쟁(黨爭)의 부정적인 요소를 절실히 체험하였기에 당파(黨派)를 초월해 인재를 골고루 발탁하는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했는데 이런 정책을 최초로 건의한 인물은 숙종 대에 좌의정(左議政)을 역임했으며, 영조 대에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됐던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였다.

한편 영조의 장남(長男)은 본래 효장세자(孝章世子)였으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1735(영조 11)년 새로운 왕자(王子)가 탄생했는데, 그가 바로 정조의 부친(父親)이 되는 사도세자(思悼世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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