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바보

이상호(1954 ~  )

있는 대로 팔을 잔뜩 다 벌리고

언제나 누구든 안아줄 준비하는

나무들

제 아랫도리 잘라 갈 누군지도 모르고

팔자인 양 힘껏 양팔 벌리고 맞이하는

 

 

[시평]

흔히 ‘자연’을 큰 스승이라고 말한다. 나무며 나무들이 어울리어 이룬 숲이며, 이러한 숲을 가슴에 안고 버티어 서 있는 산이며, 그러한 산에서 살고 있는 온갖 동식물들을 생각하면, 이러함을 모두 품고 있는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위대함이 말 그대로 ‘자연(自然)’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 사실을 눈감고 생각해 보면, ‘자연’은 더욱 위대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크나큰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자연은 그 누구도 반갑게 맞이하며 더불어 살고자 한다. 특히 서 있는 나무를 보면 이런 모습은 더욱 확연하다. 누구든 반갑게 맞이하며, 그 누구든 힘껏 안아줄 준비가 돼 있는 듯한 나무. 실은 이러한 나무와 같은, 아니 자연과 같은 사람이 요즘 더욱 그립고 절실하다. 그러나 어디 세상에서 이런 사람 찾아볼 수 있을까. 더구나 자칫 방심하면 언제 제 아랫도리 뭉떵 잘라 갈지도 모르는 험난한 세상인데 말이다.

실은 이러한 삶이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그러므로 모두 함께 잘 사는 삶인데 말이다. 이를 모르고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을 ‘준비된 바보’라고 은근히 무시하고 심지어는 헐뜯기까지 한다. 언제고 바보 소리 들을 것을 준비하듯이, 그렇게 사는 그런 사람, ‘준비된 바보’. 그러나 우리가 사는 오늘 실은 이러한 ‘준비된 바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 모두 ‘준비된 바보’인 양 살아가므로 그 누구와도 서로 어울리어 사는, 그러므로 더불어 사는 그런 삶. 오늘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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