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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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부터 도쿄올림픽이 막을 올려 열전을 벌이고 있다. 1년여의 연기 진통에도 최근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아 ‘하느냐’, ‘마느냐’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도쿄올림픽은 막상 뚜껑이 열리면서 세계 최고의 스포츠제전답게 연일 뜨거운 승부가 펼쳐지는 모양새다. 한국팀으로서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57년 만에 다시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만큼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한국에서 스포츠 한일전은 영광과 굴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전에서 이기면 영광의 상징이고, 지면 굴욕의 상징이었다. 언론들은 한일전만 벌어지면 크게 보도하면서 국민 사기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모습을 되풀이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이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남자 양궁팀은 지난 26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단체전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맞닥뜨렸다. 한국인 지도자 김상훈 감독으로부터 집중 조련을 받은 데다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오래 훈련하며 홈 이점까지 누린 일본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세트 스코어 2-2로 동점을 이룬 뒤 승부를 가리는 슛오프에서 양 팀은 28점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고교 궁사’ 김제덕이 중심부에 가장 가깝게 화살을 쏘아 한국이 결승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김제덕의 10점이 중심에서 3.3cm, 가와타의 화살이 5.7cm 떨어져 있었다. 2.4cm가 한일전 승부를 가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팀은 결승에서 대만을 여유있게 꺾고 세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정작 국민들의 관심은 일본과의 준결승에 모아졌다. 그만큼 한일전은 역대 숙명의 라이벌 대결로서 승부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비록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승리를 했지만 대부분의 다른 종목에서는 한일전이 벌어졌지만 지는 경기가 많아 국내 언론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역대 스포츠 한일전은 국민들의 분열을 모으고 단합을 이끄는 데 많은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 이른바 인기종목 한일전에서 한국이 승리하면 언론들은 마치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긴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1964년의 도쿄올림픽과 2021년의 도쿄올림픽은 시대적 환경이 많이 다르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만 해도 일본은 전후 패전을 딛고 일어나 경제 부흥에 성공하며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음하는 시절이었다. 이에 반해 한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돼 누추한 경제력으로 연명하던 때였다. 어떠한 종목이든 일본에게 이기기만해도 전 국민이 열광했다. 피압박의 피해의식과 고단한 가난함을 딛고 일어서는 정신적 자양분 역할을 했다.

2021년 도쿄올림픽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으며 국민들은 한일전에 예전만큼 승패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 등이 아직도 한일전 승부에 일희일비하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여전하다.

앞으로 한일전은 영광과 굴욕의 상징이 아닌 평범한 다른 나라와의 대결로 여겼으면 한다. 한국의 시대적 환경이 일본의 지배를 당했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한일전에 좀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극일(克日)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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