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not caption

남북이 지난 27일 오전 10시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무려 413일 만에 복원했다. 사실상 전격적이었다.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미관계는 뚜렷한 변화 조짐이 없었다. 미국 특유의 원론적 대화론과 북한 특유의 신중한 간보기가 맞물리면서 그동안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끊겼던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갑자기 복원됐다는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소식이다. 남북 간에 물밑에서 상당한 교감과 소통이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혹여 조만간에 남북 간, 그리고 북미 간에 놀라운 변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이래저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그 궁금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아닐까 싶다.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하고 북핵문제를 풀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의 중추적인 역할도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동의가 필요한 대목이긴 하지만 먼저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가 그 핵심이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의 북미 간 대화와 평화협정 문제도 이런 방식으로 추진됐었다. 막판에 미국이 돌아서는 바람에 협상 결렬이 되고 말았지만 당시의 핵심 문제와 그 해결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합리적 외교의 상징과도 같은 의미가 있다. 미국이 여태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풀어낸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위상은 물론 이후 미국의 상하원 선거나 차기 대선에서도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선다면 그 마저도 쉽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나름 최적이란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결심만 한다면 얼마든지 ‘거대한 외교적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 2차 대전의 ‘마지막 철조망’을 걷어 낼 수 있다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북핵 문제 이후 북한의 이익을 얻어 낼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남북 간의 신뢰는 그대로 살아 있다. 한미 관계도 좋다. 김정은 위원장이 결심만 한다면 남북미를 잇는 외교 채널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더 바쁘다. 임기 초부터 총력적으로 펼쳤던 북핵 외교가 임기 마지막 해까지 손에 잡히는 뚜렷한 성과 없이 시간만 보냈다. 공을 들였던 것에 비하면 그 성과는 너무나 초라하다. 이대로 임기를 마친다는 것은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회한이 될 것이다. 무엇인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의지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내년 3월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자칫 정권을 넘길 수도 있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임기 초부터 총력을 기울였던 북핵 해법을 찾아서 최종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종전선언이나 평화체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이즈음 흘러나온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 소식에 이런저런 기대감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마침 ‘로이터’ 통신이 28일 한국 정부의 관계자 말을 전하며 “남한과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남북이 통신 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이번 정상회담 논의가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과도 연결 된다”고 덧붙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면밀한 어떤 큰 프로젝트가 임기 말 ‘레임덕 없는 정부’의 연장선에서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청와대가 이를 즉각 부인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논의 중이라는 외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논의 된 바도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번 남북 통신선 복원도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북미가 다시 힘겨루기를 벌이는 동안, 북한이 한국을 맹비난하던 그 시점에도 남북 정상 간에는 친서가 오갔다. 벌써 수차례의 친서를 주고받으며 서로 간에 상당한 신뢰관계가 조성됐다는 뜻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올 초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미국산 앵무새’ 운운하며 거친 말을 쏟아 낼 때도 김정은 위원장은 계속 침묵했다. 남북 정산 간에는 최소한의 신뢰관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할 대목이다.

내년 대선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교체하자는 여론이 비등해지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정권교체론은 곧바로 태풍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헌정 사상 최초로 ‘레임덕 없는 정부’가 된다면 국민의힘 후보들은 누가 나와도 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올 10월 전후 남북 간에, 또는 북미 간에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 이슈가 불거지고 그 성과가 가시화될 경우 국민의힘이 달리 손을 쓸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북한 문제는 지금 매우 민감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슈 한복판에 이번 남북 통신선 복원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인 셈이다.

민주당은 벌써부터 남북 통신선 복원 소식을 환영하면서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다시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이번 통신 복원이 구애가 아닌 소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애써 평가 절하했다. 갑자기 부상한 남북 통신선 복원, 과연 ‘통신선’만 복원한 것일까.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북 및 북미 관계에도 골든타임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