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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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구가 기득권 집단 중심으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재계만이 아니다. 법조계, 학계, 문화계, 종교계를 망라한다. 헌정회까지 나섰다.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이재용 석방’이라는 과녁에 맞추어 한국사회가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가석방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받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어물쩍 넘겼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는 어법을 구사했다.

이재용을 사면 또는 석방을 위해 군불 때는 세력은 이전에도 있어 왔다. 지금은 더욱 강력한 세력으로 불어났다.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등 보수 언론매체는 이재용 사면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도 힘을 싣는 말을 했다. 보수 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여당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사회 대다수의 사회구성원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한 세상이 펼쳐지길 희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재용 석방 요구는 왜 이리 줄기차게 나오는 걸까? 이재용은 양심수도 아니고 의적도 아님에도 그의 석방을 학수고대를 넘어 염원이나 된 듯이 읊조리는 사람들이 줄기차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로 채워진 이런 저런 조직에서는 그의 석방이 곧 정의라는 듯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가 석방되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 같은 인식의 밑바탕에는 삼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이라는 기업집단이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와 협력업체로 불리는 하청업체 노동자, 수많은 소비자, 주식을 한 주 두 주 소유한 개미들의 피땀으로 운영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거부하는 사고의 소산이다. 오늘의 삼성이 존재하기까지 노동자 농민 소비자 등 국민 다수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망각한 결과이다. 삼성을 우리 시대가 일군 소중한 기업공동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재용 일가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가치관이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거론되는 이재용 사면 또는 석방 요구와 현 정부의 반응을 보면서 지난 2009년 12월 31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사면을 결정한 ‘이건희 원포인트 사면’이 떠오른다. 한국을 두고 삼성공화국이라 부른다지만 삼성이 얼마나 힘이 세기에 대를 이어 사면 요구가 분출하는 걸까? 일개 기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죄를 지어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사면하라, 석방하라는 목소리가 힘센 기득권자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유력 언론매체와 학자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장단 맞추는 모습은 한국 사회 아니면 볼 수 없는 희귀한 장면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비리사범에 대해서는 사면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이 말을 기억하는 국민이 많다. 국민들과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선출직 공직자가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무엇을 근거로 믿음을 유지할 것인가?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과 그 이전 야당 활동 기간 동안 국민에게 약속을 무수히 했다. 대표적인 공약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스텔라데이지호 유해 수습,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 ‘산재 반으로 줄이기’ 등이다. 이들 공약은 지켜졌는가? 거의 모두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이재용을 사면하거나 가석방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권 탄핵으로 집권한 정권이기 때문이다. 삼성 이재용은 국정농단으로 내쫓긴 박근혜와 최순실, 그의 딸 정유라에게 부정한 돈을 갖다 바쳤다. 박 정권은 재벌과 유착을 통해 국정을 농단했다. 이에 대한 국민대중의 저항에 힘입어 집권한 인물이 문 대통령이다. 이재용 석방은 한 개인을 석방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국정농단의 공범을 내어주는 행위이다. 촛불민심에 대한 배신의 문제고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재용을 석방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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