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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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복수극이라는 점이 공통적이어서 아이러니하다. 그만큼 복수는 이 시대의 당연한 화두인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더구나 영화 ‘랑종’ ‘블랙위도우’ ‘킹덤-아신전’은 모두 여성을 중심으로 한 복수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공교롭다. 아마도 가장 사회적 약자이면서 가장 강력한 잠재적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랑종’에서는 복수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태국의 무당(샤먼) 랑종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한국 공포물의 계보를 잇는다. 바로 원혼을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즉 복수를 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원혼들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그들은 악령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억울하게 죽어간 약자들이다. 원혼 복수극의 특징은 현실에서 약한 사람들이 원혼이 돼 복수에 나서면, 갑자기 매우 강력한 초능력을 소유한 존재들이 된다. 비록 전설의 고향처럼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랑종처럼 빙의하는 케이스가 요즘 대세 트렌드로 보인다.

영화 ‘블랙 위도우’에서는 과거 냉전기에 납치된 여아들이 살인병기로 길러지고 나중에는 가차 없이 버려지는 냉혹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게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리는 자들에 대해 여성 중심으로 복수하는 내러티브가 눈길을 끈다. 그들의 복수 코드는 ‘킹덤-아신전’과 같은 면이 있다. 아신(전지현)은 자신은 물론 부족 전체를 궤멸의 상황에 처하게 한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것이 처음에는 같은 동족인 만주족에게 향하지만 나중에는 조선군으로 겨눈다.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와 다른 것은 아신을 무공의 소유자로 만든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였다. 블랙 위도우가 자신을 병기로 만든 이들에게 그 트레이닝 받은 살인기술로 복수하는 완결적인 피드백의 부메랑 전법을 보여주는 것과 아신은 다른 점이다. 아신은 그런 축에도 끼지 못하고 돼지우리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겠다.

동서양의 복수 코드가 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랑종’과 ‘블랙 위도우’를 비교하자면, ‘랑종’은 이생이 아니라 저승에서 복수를 하며, 직접 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통해서 복수를 한다. 다만, 가문의 업보를 딸이 짊어지게 만들고 파국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가족주의 성향을 보인다. ‘블랙 위도우’에서는 대안 가족도 가족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복수는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한다. 저승보다는 현세의 직접적인 해결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킹덤-아신전’은 할리우드의 영향을 더 받았기 때문인지 직접적인 복수를 진행한다. 다만, 동양적인 정서가 있어 혈연 가족과 부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 안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대안 가족이 될 수도 있을 조선 군영은 순식간에 복수의 대상이 될 뿐이다. 어쩌면 그러한 방식이야말로 조선에서 수많은 원한을 낳을 수 있겠다.

이렇게만 말한다면 ‘킹덤-아신전’에 대해 혹평만 한듯싶다. 다만 눈여겨봐야 할 점도 있다. 사실 가족 복수를 하는 이유는 가족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은 그들에 원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복수의 근원적인 동기는 아니다. 진짜 바라는 것은 죽음을 당한 그들을 살려내는 것이다. 하지만 살려낼 수 없기에 복수라는 간접적인 해결 방법을 추구한다. ‘킹덤-아신전’에서는 복수와 동시에 그들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생사초이다. 그들을 옆에 두고 싶다는 욕망의 실현이다. 하지만 대가는 있었다. 좀비 괴물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대화를 할 수 없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식욕을 위해 으르렁거릴 뿐이다.

‘랑종’에서 말하려는 것은 자연 세계의 무한성과 절대성에 비해 인간은 유한한 점이란다. 바얀신을 등장시킨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위성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원혼의 복수는 판타지일 지라도 직접 복수는 자기 합리화는 물론이고 또 다른 욕망의 충족일 수도 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신화를 탄생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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