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홈페이지)
아산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홈페이지)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탈(脫) 탄소’ 선언과 동시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수주한 굴지의 대기업이 ‘그린워싱’이라고 비난받았다. 바로 현대자동차와 현대건설이 그 주인공이다. “이봐, 해봤어?”라고 했던 고(故)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도 그렇게는 하지 말라고 했을 일이다. “이익이냐 신용이냐 중에서 선택하라면, 나는 언제나 신용”이라고 했던 정주영의 정신을 현대가 버린 것이다.

호주의 환경단체 ‘마켓포시스’가 지난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광고를 개재했다. 현대자동차(현대차)가 친환경 전기차 ‘아이오닉’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현대건설을 통해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마켓포시스는 현대차를 향해 그린워싱이라며 비난했다.

현대건설의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알려진 것은 마켓포시스의 광고가 게재된 이후였다. 물론 광고가 있기까지 알 수 없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현대건설은 베트남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묵묵히 추진했다. 자사의 봉사활동까지 보도자료를 내며 홍보하던 업계 2위의 대형 건설사가 석탄화력발전 같은 인프라 구축사업을 묵묵히 진행할 이유는 많지 않다. 공공연히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현대건설도 현대자동차도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선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가 심각하다. ‘열돔 현상’으로 미국 전역에선 서울 면적의 2.6배에 달하는 산림이 불타 없어졌고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에선 이례적인 폭우와 홍수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 중국 허난성에선 지난 17일부터 3일간 연간 강수량에 해당하는 617㎜가 쏟아져 주민 750만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됐다.

‘재난영화’가 실사판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만 일부 재난영화가 권선징악을 시사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현실에선 사후 처리에 많은 사람의 노력과 천문학적인 복구 비용이 동반된다.

그리고 이 같은 자연재해엔 따라붙는 말들이 있다. ‘지구온난화’다. 지구가 뜨거워져서 이상기후가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이상기후를 발생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는 이산화탄소(CO₂)가 지목받는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져 열이 지구 안에서 맴돌기 때문이다. 오른 열은 빙하를 녹이고, 물을 증발시켜 많은 구름과 바람을 만든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30여년 전인 1992년 브라질 리우회의에선 기후협약이 체결됐고 이산화탄소(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세계 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을 앞세워 마케팅했고 실제로도 전기차, 재생에너지, 리사이클링을 산업현장에 활용하며 탄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앞장섰다.

다만 세계를 무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발생하는 환경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공해와 소모되는 에너지가 이산화탄소 발생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있어서다.

현대건설이 석탄발전사업을 은밀히 추진한 게 들통나 비난을 받고 있지만 발전소 건설 같은 인프라 사업은 국가에서 추진하는 부분이 있어 현대건설에만 비난의 화살이 쏠린다면 건설사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건설은 그저 기업으로서 당연히 이윤을 추구했을 뿐이고, 여론이 안 좋을 게 예상돼 조용히 추진했을 뿐이다.

아울러 발전소 건설 사업에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를 비판하는 여론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쓰비시에서 돈을 받은 하버드대 교수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망언을 생각하면 현대건설의 이 같은 행보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심지어 해당 광고 게재 당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탈 탄소 선언을 했기 때문에 사실이 알려지면 신뢰를 중시했던 고 정 명예회장의 정신을 짓밟는 것이라 조심스러웠을 것이기도 하다.

현대의 걱정과는 달리 자연을 사랑하고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호주의 환경단체에 의해 베트남 석탄화력발전 사업은 들통이 났고, 무를 수는 없기에 “이번까지만 하고 탈석탄할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사업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정 회장은 타계했지만 그 이름과 정신이 현대에 남아 있기에 우리는 그를 기억하며 현대를 바라본다. 하지만 현대는 신용이 중요하다던 정 회장의 정신을 버렸으니 우리에겐 그저 정 회장이 과거에 세웠던 큰 기업인 현대가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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