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려한 불꽃이 올림픽 개막을 알리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려한 불꽃이 올림픽 개막을 알리고 있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숱한 논란으로 점철된 2020 도쿄하계올림픽. 개막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막식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장기가 게양되며 울려 퍼지는 기미가요에 한국 시청자들은 분노를 토했다.

기미가요는 군국주의를 상징해 오랜 논란을 빚고 있는 일본의 국가다. 특히 가사에 ‘임의 치세는 천 대에 팔천 대에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구절이 일왕의 시대가 영원하기를 염원하기를 기원하고 있어 욱일승천기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힌다.

기미가요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폐지됐다가 1999년 일본의 국가로 법제화됐다. 현재 학교 입학식·졸업식 등에서는 의무적으로 제창하고 있다.

일본의 정상급 가수 미샤가 기미가요를 부르자 국내 SNS에는 네티즌들이 “화합과 평화를 외치면서 어떻게 기미가요를 부를 수 있는가” “기미가요 나온다고 틀어주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무엇을 불렀어도 기미가요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 “다시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똑같은 짓을 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등 비난을 쏟아냈다.

이후 코로나19 희생자를 위한 묵념의 시간에는 밖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시위대의 함성과 구호가 들리면서 국내에서 조차 환영을 받지 못하는 올림픽의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또한 이 같은 상황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관중의 출입을 금지해 텅 비고 적막한 경기장을 주목하게 했다.

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15억 달러 규모의 신국립경기장은 7만명 가까운 인원을 수용할 수 있지만 이날 밤 개막식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부분 자리가 비었다. 개막식에는 약 950여명만 참석했다.

올림픽 위원회 측은 텅 빈 좌석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 의자에 다른 색의 덮개를 씌웠으며 이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개막식에 참석한 미국 신경외과 의사 산제이 굽타 박사 CNN에 경기장 내부 분위기를 “너무 조용하다”고 표현했으며, BBC 기자인 스콧 브라이언은 “당신은 핀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 작가인 올리버 홀트도 “개막식에서 음악이 잔잔해질 때마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대 시위의 함성이 선명하게 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관중석에 팬이 없어 개막식이 ‘리허설’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WP는 “(개막식의) 에너지 부족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WP는 공연 초반에는 경기장 밖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 소리가 침묵해야할 순간을 깼으며, 경기장 내 박수갈채는 팬이 아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내부자들에게서만 나왔다고 전했다.

23일(현지시간) 통가의 피타 타우파토푸아 선수가 일본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 개막식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3일(현지시간) 통가의 피타 타우파토푸아 선수가 일본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 개막식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각국 선수단의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선수들의 각양각색 모습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모였다.

우크라이나와 아랍에미리트(UAE) 선수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걸었으며 아르헨티나 선수단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많은 선수들은 입장하며 휴대전화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선수단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다양한 마스크도 눈에 띄었다.

이날 전체 1만 1천명의 선수 중 5700명만이 선수단 입장에 참여했다. 24일 경기가 있는 선수들은 종종 개막식에 참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는 선수 232명 중 김연경(배구)과 황선우(수영)를 기수로 26명의 선수가 개막식에 참석했다.

모든 언론과 여론이 하나가 된 순간은 다름 아닌 통가의 ‘근육맨’이 등장하면서다.

피타 타우파토푸아(35, 태권도)는 5년 전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식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웃통을 벗고 전통 의상을 입고 행진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돌풍을 일으켰다.

타오파토푸아는 세 번째 올림픽에 참석해 말리아 파세카와 함께 통가 선수단의 기수로 나섰다.

타오파토푸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통가의 근육맨이 기름을 두르고 다시 돌아왔다”고 빠르게 그의 소식을 타전했다. AP통신, CNN방송, 가디언, WP 등 세계 주요 언론 중 그의 소식을 전하지 않은 언론은 거의 없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욕타임스(NYT) 기자들 코멘트에서는 “적어도 이번에는 평창에서 처럼 영하의 온도에서 옷을 벗고 행진하고 있지는 않다” “통가는 개막식에 알맞은 사람” “리우에서 온 셔츠를 벗은 통가의 기수가 돌아왔다! (또한 그는 공학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대상화 하지 말라)” 등의 반응이 나왔다.

리우 올림픽 이후 명성을 얻은 타우파토푸아는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노숙자 쉼터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국가들을 위해 스포츠 장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에도 나서고 있다.

[도쿄(일본)=뉴시스] 23일 오후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도쿄(일본)=뉴시스] 23일 오후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선수단 입장이 끝난 뒤 경기장 상공에는 1824대의 드론이 지구 모양으로 하늘을 가득 메웠으며 안젤리끄 키드조, 알렉한드로 산스, 존 레전드, 키스 어반 등 세계 각국의 음악가들이 함께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공연을 펼치며 평화를 주창했지만 어떤 순간도 타우파토푸아 만큼의 호응은 얻지 못했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요약한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역병으로 1년을 연기해 우여곡절 끝에 열린 이번 올림픽에서 어떠한 감동과 단결의 의미는 고사하고 통가의 한 스타 선수만이 가장 큰 주목을 받으면서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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