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도심의 슈퍼+센터코트 전시장에서 오는 9월 15일까지 전시되는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출처: 연합뉴스)
뮌헨 도심의 슈퍼+센터코트 전시장에서 오는 9월 15일까지 전시되는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출처: 연합뉴스)

문화예술가단체 ‘아트5’ 한일작가 기획전 ‘예술과 민주주의’

전시장 실무진에 소녀상 전시 반대 이메일 수백 통 쇄도

21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뮌헨 도심의 ‘슈퍼+센터코트’ 전시장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선보였다. 독일 내에서는 다섯 번째로 설치·전시되는 소녀상이다.

뮌헨 조형예술대학 인근의 갤러리와 미술관이 운집한 동네 사거리에서 양방향으로 24시간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시장 안 소녀상은 지나가던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씽씽이를 타고 지나가던 한 소녀는 한참 멈춰서 소녀상을 바라보다 엄마의 재촉에야 다시 길을 떠났다.

인근 뮌헨 조형예술대에 재학 중인 정현 씨는 “소녀상이 뮌헨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다들 많이 알고 있더라”면서 “소녀상을 여기서 보니까 친근감이 들기도 하면서 이상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정씨로부터 소녀상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들었다는 지미 웡씨는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주목하게 하고,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거니까 좋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독일 문화예술가단체 ‘아트5’는 이날부터 9월 15일까지 뮌헨 슈퍼+센터코트와 플랫폼에서 ‘예술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국과 일본 작가 기획전을 개막했다.

레나 폰 게이소 아트5 공동대표는 개막식에서 “이번 전시의 목적은 예술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 형성에 기억의 문화와 과거 청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재현 아트5 대표는 “민주주의의 저항의 힘을 예술로 보여주자는 게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독일 플랫폼에 전시된 이동환 작가의 장준하 목판화 시리즈. (출처: 연합뉴스)
독일 플랫폼에 전시된 이동환 작가의 장준하 목판화 시리즈. (출처: 연합뉴스)

이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과거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이야기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데, 소녀상 전시를 통해 무엇이 우리를 침묵하게 짓누르는가를 묻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바로 표현의 자유라고 얘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김서경 작가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위안부 피해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7년 6월 항쟁이 불러온 민주화가 있었다”면서 소녀상이 민주화와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작가가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2011년 12월 14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해 처음 세워졌다. 이들 작가가 제작한 소녀상은 지난 10년간 국내 82곳, 해외 16곳에 둥지를 틀었다.

소녀상 전시와 관련해 일본 측은 철거 요구를 예고하며, 집요하게 방해 공작을 벌였다.

뮌헨 주재 일본총영사관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양립하지 않는다”며 소녀상이 철거되도록 관계자를 상대로 설명을 계속하고 설득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일본 공영방송 NHK가 전했다.

일본 영사관 측은 뮌헨시와 바이에른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 페트라 켈리 재단,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등 후원단체에도 소녀상 전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시장 실무진에게는 '평화의 소녀상은 한일 간 분쟁의 원천으로 인권보다는 정치적 사안으로, 이런 전시에 관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이메일이 하루에 수십 통씩 지금까지 수백 통 넘게 쇄도했다.

김시영 작가의 반복 시리즈. (출처: 연합뉴스)
김시영 작가의 반복 시리즈. (출처: 연합뉴스)

앞서 일본 측은 지난 4월 16일부터 오는 8월 1일까지 일정으로 독일 드레스덴 공공박물관에 처음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 로비에 나선 바 있다. 주독일 일본대사관은 주최 측에 소녀상 전시가 유감이라는 뜻을 밝히면서 철거를 요구했다.

소녀상 전시와 병행해 뮌헨시 전시공간 플랫폼에서도 예술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묻는 한국과 일본 작가들의 전시가 막을 올렸다.

정영창 작가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병을 얻어 사망한 민간잠수사 김관홍, 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어머니 김인숙, 중국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 등 민주주의의 주춧돌인 시민들의 얼굴을 대형 화폭에 단색으로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이동환 작가는 일제강점기 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 운동가 장준하의 일대기를 담은 대형목판화 작품을, 노순택 작가는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시위와 한·칠레 FTA 반대 시위,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시위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을 담은 사진 작품을 전시했다.

김시영 작가는 작고 귀여운 인형을 활용해 폭력적이고 슬픈 사건을 보여주는 반복 시리즈를 선보였다.

또 일본 후지이 히카루 작가는 고대 그리스 공동묘지에서 약 80구의 유골이 발견된 사건을 사진과 영상에 담은 ‘중요한 사실(The Primary Fact)’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기원전 7세기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전 혼란스러운 아테네에서 반란 속 민주주의의 의미를 연극적 요소를 활용해 30분간의 영상으로 표현했다.

후지이 작가는 지난 2019년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기획전에 참가했다가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작품 전시를 같은 날 하루 동안 중단했던 작가다.

(뮌헨=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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