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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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씨와 공모해 포털사이트의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21일 대법원에서도 징역 2년이 확정돼 지사직을 잃게 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무려 4년간 끌어왔던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은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김 지사는 이번 유죄 판결로 인해 정치인으로서 회복 불가능 할 만큼의 타격을 입게 됐다. 여론조작으로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신뢰에서도 결정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소 젠틀하고 반듯한 언행을 보여 왔던 김경수 지사의 유죄판결은 ‘대행체제’로 가는 경남도정은 논외로 하더라도 당장 민주당의 대선 레이스, 그리고 문재인 정부한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가 걸어왔던 정치인으로서의 길, 그 중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주류세력’의 상징이 강하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심화 및 확산은 그들 정치적 주류세력의 자긍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드루킹의 몰락’과 ‘김 지사의 퇴장’은 곧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과 당내 주류세력의 불법성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죄질도 매우 나쁘다. 그 죄질이 민주주의의 근간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서 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경수 지사는 대법원 유죄 판결 직후 도청을 떠나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감내해야 할 몫을 감당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발언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러나 중요한 부분을 빠트렸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국정원 등 댓글 조작사건에 분노한 ‘촛불 민심’이 들불로 확산되던 그 즈음에 박 정부의 국정농단을 심판하자던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김 지사를 비롯한 일부는 ‘새로운 기법’ 운운하며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것이다. 촛불을 든 ‘분노한 사람들’ 뒤에서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배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지지해준 시민들조차 모르게 여론 조작을 했다면 먼저 국민과 지지자들 앞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김 지사는 이런 엄청난 일을 단지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 ‘꼬리 자르기’를 한 셈이다. 그러니 ‘감당하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짓밟은 이번 사건이 어찌 김 지사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더 아쉬운 것은 김경수 지사가 반성과 성찰 대신에 여전히 억울하다며 대법원의 최종 판결마저 불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지사는 대법원 판결 직후 “법정을 통한 진실찾기가 막혔다고 해서 진실이 막힐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마디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은 잘 못 됐다는 것이며, 대법원이 진실 대신에 거짓의 손을 들어 줬다는 주장이다. 명색이 국회의원 출신의 경남 지사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주류세력 가운데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런 김 지사가 대법원 판결마저 이런 식으로 뭉개는 듯한 발언은 상식 밖이다. 젠틀하고 반듯한 언행의 소유자인 김 지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김경수 지사의 퇴장이 확정되자 바쁘게 돌아가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는 더 바빠지게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친문 주류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김 지사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김 지사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할 수도 없다. 자칫 여론의 거대한 역풍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 지사의 퇴장 이후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각 후보들의 고민과 전략이 교차하고 있을 뿐이다.

드루킹의 몰락과 김경수 지사의 퇴장은 정치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 야권에서 말하는 ‘정통성 시비’는 과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김 지사의 퇴장 정도에서 끝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내년 대선 정국에서 끊임없는 여야 공방전의 핵심 소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안 자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도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불리하다. 청와대와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드러내 놓고 김 지사와 드루킹을 옹호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배경이다. 따라서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생각도 비교적 간명할 것이다. 친문 주류세력은 이미 퇴조하고 있다. 그리고 각 정파로 분화돼 있으며 이미 서로 다른 대선 후보 캠프로 합류한 상태다. 김경수 지사의 퇴장은 이런 현실을 더 굳히게 할 뿐이다. 더 이상의 결집과 더 이상의 영향력 행사는 불가능에 가깝다. 혹여 김 지사의 ‘옥중 메시지’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건 ‘거대한 역풍’에 다름 아닐 것이다. ‘과유불급’의 교훈을 제대로 안다면 이젠 김 지사를 잊는 게 더 낫다. 동시에 친문 주류세력의 영향력도 그만큼 줄어 들 수밖에 없게 됐다.

민주당 대선 레이스는 앞으로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친문 주류세력의 퇴조, 또는 중립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선 레이스의 흥행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특정 세력에 대한 구애, 특정 지역의 몰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판세 흔들기는 민주당 대선 레이스의 ‘공공의 적’이었다. 그 결과 자칫 대선 후보들 간의 내부 갈등으로 비화돼 ‘원팀’이 무너지는 최악의 결과도 배제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 지사는 비록 억울하다지만, 김 지사의 퇴장을 당내 정치지형으로 본다면 민주당 대선 레이스는 더 공평하고 더 치열해질 것이며 동시에 국민적 관심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김 지사의 퇴장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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