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현, 박수란 기자]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된 것을 축하하고 준법정신을 높일 목적으로 지정된 제헌절이 올해로 63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기념행사들이 줄어들고 ‘조용한 제헌절’로 지나가고 있어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에 헌법의 중요성을 되새겨보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이날을 국가 기념 휴무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총선거 실시(1948. 5. 10)

◆제헌절의 의미와 중요성
제헌절은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날이다. 헌법 제1조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이 하나의 조항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제해방 이후 남북분단, 신탁통치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1948년 5월 10일, 우리는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은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제헌국회’를 만들었다. 198명의 초대 국회의원들은 그해 7월 12일 자주독립국가의 기틀이 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처음으로 제정했다. 조선왕조 건국일인 7월 17일에 맞춰 헌법을 제정, 민주국가로 공포한 것을 기념했다.

제헌국회는 3.1운동을 계기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대한’이라는 국호를 사용했기에, 독립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 당시 헌법은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민주국가의 밑거름이 됐다.

서울대 성낙인 법대 교수는 “헌법은 나라의 기초를 닦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5000년의 역사에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처음으로 만든 나라문서인데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 헌법 제정, 공포(1948. 7. 17)

◆점차 사라지는 기념행사
중요한 의미가 담긴 제헌절이지만 최근 그 뜻을 기리는 행사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국회에서 주최하는 제헌절 기념행사 정도만 마련될 뿐 각 지자체, 구청, 시민단체들이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거나 기념하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서울 중구청 총무과 임재빈 사무관은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된 제헌절이 다가와도 태극기 게양을 독려하고 홍보하는 일밖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제헌절 공식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국회 사무처 관계자도 “올해도 경축식 외에 별다른 행사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제헌절 의미 새기는 공휴일 됐으면…”
3.1절, 광복절, 한글날, 개천절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인 제헌절은 4년 전만 해도 공휴일이었다. 그러나 2008년 제헌절은 국경일의 지위는 유지하되 공휴일에서는 제외됐다. 즉 ‘쉬지 않는 국경일’이 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주5일제 시행을 확대하면서 쉬는 날이 많아지자 국가 경쟁력 면에 불리하다는 판단에서 휴일을 줄이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어 보인다. 지난해 이를 두고 정부에서 한창 논의가 진행됐었지만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현재 쉬지 않는 국경일을 전부 공휴일로 개정하자는 법률안이 제출돼 심의 중에 있다.

시민들도 제헌절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학생인 임희주(22, 여) 씨는 “솔직히 제헌절의 의미가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며 “행사가 다채롭게 마련되고 공휴일이라면 여유를 가지고 TV 등을 통해 제헌절 관련 행사나 뉴스를 접하게 되고, 그 의미와 역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에 사는 이효상(60, 남) 씨도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니기에 기념행사도 거의 없고 중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 것 같다”면서 “지금은 마치 공무원들끼리 하는 행사가 돼버린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공휴일이 많아 일을 더 하자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인데 최근 여가생활을 더 즐기려는 목적으로 주40시간이 됐다”며 “개인시간을 갖기보다는 제헌절과 같은 뜻깊은 날을 쉬는 날로 정해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기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교육 강화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시민들이 헌법 정신을 바로 새기고 제헌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근·현대사 교육이 좀 더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언론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제헌절이 무슨 날인지 정확히 아는 학생은 40% 정도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학교현장에서도 근·현대사 교육에 대한 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고 장두호 역사교사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제헌절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며 “한 학기 동안 한국사를 다 배워야 하기 때문에 1948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을 심도 있게 수업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50분의 수업시간 내에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까지 5년간의 내용을 전부 다 가르쳐야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헌법의 의미와 제헌절에 대한 내용은 1분 정도로 다루고 넘어 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제헌절을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역사교육 수업시간을 늘리고, 근·현대사 부분도 비중 있게 가르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제헌절 재조명, 사회 현실 속 헌법정신 살려내기
헌법은 국민정서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에 그 안에서 우리나라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전북대 송기춘 법학과 교수는 “헌법은 국가의 구성과 운영을 위한 기본법이다. 인간은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존재 의의는 바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것이 헌법의 핵심”이라며 헌법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또 송 교수는 헌법 제정의 날을 기리는 제헌절을 국가 휴무일로 하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잊지 말자는 데 있다고 전했다.

우리 국민이 헌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오늘날 제헌절의 의미를 올바른 방향으로 재조명하는 것에 대해 송 교수는 “이는 바로 우리 사회 현실 곳곳에서 헌법의 정신이 살아 숨 쉬며 바르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국가와 사회생활 전반에서 헌법에 기록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제헌절을 기념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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