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차량용반도체 매출현황(왼쪽)과 2020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출처: 한국무혁협회, 자료: OMDIA) ⓒ천지일보 2021.7.18
글로벌 차량용반도체 매출현황(왼쪽)과 2020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출처: 한국무혁협회, 자료: OMDIA) ⓒ천지일보 2021.7.18

국내 반도체산업의 명암 <3>

 

차량용반도체 수요 예측 실패

한파·화재 등 재해 악재 겹쳐

TSMC 지배력 갈수록 높아져

“반도체 내재화해 국내 생산↑”

정부, K-반도체 전략 수립

소재·부품 국산화율 70→95%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이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탄소중립 정책 확대 영향으로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어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공급 차질로 인한 전 세계적인 수급불균형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으면서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차량용반도체 품귀현상, 왜 생겼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자동차 판매수요 예측 실패와 IT기기 등의 수요 급증이 맞물린 결과다.

자동차 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자동차 수요 급감에 대비해 반도체 주문량을 줄였고 이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들은 통신과 IT용 반도체 수주를 늘렸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기부양책 등의 효과로 신차 주문량이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상황은 반전됐다. 자동차 업체들은 재고소진 후 반도체 부품 확보가 시급해졌지만 파운드리 기업들은 이미 주문을 받아 둔 통신·IT용 물량을 소화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에 악재가 겹쳤다. 미국 텍사스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NXP(네덜란드), 인피니온(독일)은 한파로 전기 공급이 중단돼 공장을 멈춰야 했고 르네사스(일본)는 화재로 인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그 여파로 제너널모터스(GM),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들의 생산라인도 멈춰 섰다.

현재의 국내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이 하반기부터는 점진적으로 개선될 전망이지만 정상화 시점은 확신할 수 없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미래 모빌리티 산업 주도권 경쟁에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차량용 반도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차량용 반도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 경쟁 요소

차량용 반도체 생산 내재화 필요성은 전기차 보급 확대와 맞물리면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 차량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200여개인 반면 전기차는 400~500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전 세계 친환경 자동차 시장 규모가 지난해 1330만대에서 2025년 5660만대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2030년 판매되는 자동차 중 전기차의 비중이 30%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자동차에 충돌경보장치, 디스플레이 등 각종 안전·전자장비 비중이 40%가 넘어가면서부터 반도체 사용량이 늘었다”며 “전기차에는 이런 장비가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차량용 반도체 사용량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자동차 반도체 국내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는 것. 한국무역협회도 지난 3월 발간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 품귀 사태는 단순히 단기에 해소될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주도권 경쟁이 달린 문제로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차량용 반도체 생산 비중을 3%대에서 10%대로 늘려야 한다”며 “핵심적인 반도체는 국내에서 생산해 여러 가지 수요 공급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아 미국 조지아공장. (제공: 기아)
기아 미국 조지아공장. (제공: 기아)

◆진입 장벽 높은 차량용 반도체 산업

현재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빈약하다. 무협에 따르면 우리나라 차량용 반도체 세계 점유율(매출액 기준)은 2.3%로 자동차 생산 세계 점유율 기준 4.3%보다 낮았다. 자동차 생산보다 반도체 매출이 높은 미국(반도체 매출 31.4%, 자동차 생산 11.7%), 일본(반도체 매출 22.4%, 자동차 생산 10.5%) 등의 주요 강국들과는 대조적이다.

진입 장벽도 높다.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은 적은 생산량으로 규모의 경제 달성이 어렵고 인증·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이나 고성능 반도체의 경우 신규 사업자의 진입 장벽은 더 높다.

이런 가운데 최근 자동차 시스템이 독립 ECU(전자제어장치)에서 기능별 고성능 반도체 칩으로 통합이 예상되면서 TSMC(대만)의 지배력은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TSMC의 시장점유율을 70%로 세계 1위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정부, 국가 주도 ‘K-반도체’ 전략 수립

해외에선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자국 내 완성차·설계전문(팹리스)·파운드리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선 인텔이 파운드리 산업에 진출해 포드·GM에 공급 예정으로 추가공정 설립 없이 기존 공정에 차량용 제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9개월 내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보조금 및 전방위 협력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일본 또한 토요타·덴소가 차량용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 지분 투자 및 팹리스 합작사인 미라이즈(MIRISE)를 설립했고 정부 주도 공동 투자를 통한 TSMC 현지 공장 설립으로 반도체 공급망 위험 관리에 나섰다.

우리 정부도 지난 5월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인지, K-반도체 전략을 수립하고 반도체 산업을 국가적으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반도체 관련 제품 개발 등 투자되는 자금에 대해 최대 50%까지 세금을 감면하고 규제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은 국가 간 경쟁의 시대로 옮겨 갔다”며 “정부도 반도체 강국을 위해 기업과 일심동체가 되겠다. 기업의 노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일에는 반도체 핵심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하고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발표했다. 5일에는 ‘국가핵심전략산업 특별법(가칭)’을 제정해 배터리와 함께 반도체를 국가 핵심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정책 지원, 우수 인력 양성, 민관 협력 등의 지원을 약속했다.

무엇보다 정부는 전기·수소차 소재 및 부품에 대한 국산화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0일 전기·수소차 소재 국산화율을 현재 70% 수준에서 2025년 95%까지 제고한다는 골자의 ‘자동차부품기업 미래차 전환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이는 약 3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해외 의존도가 높은 전기·수소차 핵심부품 14종에 R&D 예산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차량용 반도체 양산 성능 평가 및 기업 간 협력모델을 지원해 공급망을 내재화하고 자율주행 6대 핵심부품 국산화 등에도 약 32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의 지원금은 현재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 문제에 대한 단기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는 초기 투자 비용이 크게 들고 투자 후 5~6년이 지나야 이익이 창출되는 사업”이라며 “공공성을 가지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호근 교수도 “정부가 코로나19 펜데믹에 대한 지원금이나 R&D·행정자금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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