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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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에 가면 스물네평 크기의 전시관이 있다. 세월호 추모 공간이다. ‘기억·안전 전시공간’이라 부른다. 여기서는 ‘세월호 기억관’으로 부르기로 한다. 서울시가 이 공간을 철거하겠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세월호 기억관의 사회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회적 존재로서 기억을 축적해 간다. 한 개인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듯 집단도 걸어온 궤적을 더듬으면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국가도 사회도 하나의 집단이라고 볼 때 고유한 역사가 없을 수 없다. 역사는 기억이 축적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고 할 때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기억을 보존하는 건 역사를 소중히 간직해서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세월호 참사를 직접 목격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 땅에 살지 않는 외국인들의 추모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광화문 기억관까지 와서 추모한 외국인들도 많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물론 사회적 의미도 다르게 해석하는 역사가 지속되긴 했지만 같은 참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은 모두 공감했다. 국가가 잘못해서 참사가 났다는 것에도 큰 이견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기억관을 없애겠다는 것은 몰역사적이자 반생명적이다. ‘역사를 잊으면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된다’ 금언은 역사의 철칙이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대가를 혹독하게 되돌려 받았다. 수없이 참사를 당하고도 수없이 부정부패를 겪고도 수 없는 침략을 당하고도 양극화의 참상을 수없이 목격하고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광화문은 ‘세월호 광장’으로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곳이다. 정권의 진상 은폐에 맞서는 ‘진실과 연대의 장’으로 자리매김한 곳이 광화문 광장이다. 2년 전 세월호 참상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세월호 기억공간을 세웠다.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고인을 추모하는 국민들의 마음과 반성과 성찰하는 마음이 담겨있음은 물론 진실규명에 대한 다짐과 각오와 결의가 담겨 있다.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다. 사소해 보이는 역사현장도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게 문명 세계의 흐름이다. 생명안전사의 현장을 멸실하고 지우려고 하는 행태는 용서받지 못할 폭거다.

오세훈 시장은 유족 대표들의 면담요구에도 응하지 않는다. 불통이다. 전임시장이 허용한 추모시설인데 시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철거 통보를 하는 건 행정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지키지 않은 행위이다. 추모시설을 옮겨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면 유족 대표들과 만나 합의점을 찾아내라. 이게 순리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꼭 필요하다면 광화문 광장 안의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까지 내놓은 상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자체의 일방통행주의는 용납될 수 없다. 광화문 생명안전 기억공간은 장소 자체가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광장 밖의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 시장은 세월호 기억관의 역사적, 안전사적 의미를 깊이 새겨 철거계획을 취소하기 바란다. 단체장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생명안전 기억관의 역사는 기한이 없다. 오 시장은 기억관 문제를 행정가의 입장으로 바라보지 말고 생명안전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안전참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하루 평균 6명이 목숨을 잃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노동자가 네 시간마다 한 사람씩 일하다가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참사가 일상화됐다는 말 말고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참사가 일상화된 이유가 무엇인가? 안전참사를 기억하고 의미를 새기기 위한 사회적 국가적 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다시는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다. 아직 진실규명도 되지 않았다. 이 중대한 시점에 ‘세월호 기억관 철거’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광화문 세월호 기억관은 반드시 존치돼야 한다. 오 시장의 빠른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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