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진압 지시‧부정축재 혐의 전면부인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지난 2월 시민혁명으로 하야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자신은 이른바 ‘인(人)의 장막’ 속에 있었으며, 시위가 시작될 때까지 국민의 요구사항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시위 참가자 800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 간 ‘유혈진압’을 지시한 적이 없으며, 재임 중 부정부패 혐의 등에 대해서도 전면부인했다.

이집트 민영신문인 알 요움 알 사베아와 알 두스투르가 14일 공개한 무바라크의 검찰 조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시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최고위 참모들이 친 장막 때문에 상황의 엄중함을 잘 몰랐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에 ‘무력을 쓰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했다면서 “나는 경찰에게 거리의 질서를 회복하라고 요구했으나 그들은 지시받은 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 참여자들이 왜 죽거나 다쳤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공격하는 상황에서 혼란이 있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또 경찰의 유혈 진압을 중단시키지 않았느냐는 추궁에는 “누구도 나와 내 명령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 및 유지를 위한 외국 원조 기금 수백만 달러가 자신의 은행계좌에 예치된 사실에 대해서는 관련 도서관 책임자들이 돈을 유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이 보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사법당국은 이 같은 조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혔고, 무바라크의 변호인들은 조작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던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25일부터 2월 11일까지 18일간 이어진 시민혁명에서 시위대를 유혈진압하고, 직위와 권한을 이용해 부정축재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권좌에서 물러난 뒤 시나이 반도의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에서 칩거해오다가 4월부터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무바라크의 첫 공판은 다음달 3일 열리며, 이집트 사법당국은 법정 밖 대형 스크린을 통해 무바라크의 재판을 실황중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무바라크 사임 후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가 과거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해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14일 이집트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려와 과거 부패에 연루됐거나 무바라크 체제하의 시민 탄압에 관여한 인사들을 군정이 신속히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슬람권 휴일인 15일 예정된 시위가 군정 기구인 이집트군 최고위원회를 향한 ‘최후통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카이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집트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 당신들이 계속 성공할 수 있다면 이집트 사례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다른 사람들의 투쟁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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