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성 (연합뉴스)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92년 김기훈-1994년 채지훈으로 연결된 남자 쇼트트랙의 금메달 계보는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선 혜성같이 등장한 김동성으로 이어졌다.

1997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남자부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깜짝 유망주로 발돋움한 김동성은 같은 해 세계선수권에서도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정상급 활약을 펼쳐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남자쇼트트랙은 간판 채지훈이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다 김동성은 아직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로 여자쇼트트랙에 비해 메달의 기대를 덜 받았다.

이미 여자쇼트트랙은 국가대표 에이스 전이경의 활약으로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남자 1000m에서 채지훈이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사이 대표팀 막내 김동성만이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강력한 우승후보인 중국의 리자준이 결승에서 버티고 있어 김동성의 금메달 전망은 밝지 않았다. 막내로서 동메달 정도면 좋은 결과라 할 정도. 그러나 막내가 큰일을 내고야 말았다.

두 바퀴를 남길 때까지 김동성은 리자준과 캐나다 선수에 뒤져 3위로 달리고 있었다. 김동성이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을 노렸으나 여의치 않았다.

1바퀴를 남기고 캐나다 선수를 제치고 2위로 치고 나간 김동성은 반바퀴를 남기고 인코스를 타고 있던 리자준의 허를 찔러 아웃코스로 들어가면서 골인 직전 발을 뻗었다.

리자준이 우승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순간 김동성은 젖 먹는 힘을 다해 발을 내밀어 먼저 골인하면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한국 쇼트트랙의 차세대 에이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쇼트트랙은 김동성에 이어 같은 날 여자 1000m 경기에서도 전이경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발을 뻗어 역전승을 따내 한반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도 했다.

그 후로 김동성과 리자준은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리자준이 1999년, 2001년 개인종합 우승을 했고, 김동성은 부상과 씨름하다 재기에 성공하면서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직전 전관왕이 예상될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동성은 솔트레이크대회에서 오심과 불운에 희생양이 돼버린 비운의 선수로 기억되고야 만다.

1000m 준결승에서 김동성은 리자준이 뒤에서 밀어서 넘어졌음에도 불구 반칙이 적용되지 않아 탈락했고, 1500m 결승에서는 가장 먼저 1위로 골인했으나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에 의한 오심 판정을 받아 황당한 실격을 당해 금메달마저 박탈당해 노메달에 머물고 만다.

계주에선 한국의 민룡이 1위로 달리고 있다가 미국 선수와 부딪히면서 넘어졌지만, 한국의 반칙으로만 인정하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실격당하기도 했다.

분노한 김동성은 올림픽이 끝난 뒤 같은 해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초로 전관왕(6관왕)의 위업을 달성하며 분풀이를 하게 된다.

특히 1500m에선 3바퀴째에 갑자기 스퍼트를 내더니 2위 그룹과 2바퀴 가까이 차이를 내는 여태껏 구경할 수 없었던 레이스로 우승을 해 사람들을 경악케 할 정도였다. 했다. 다만 오노가 불참해 김동성으로선 조금은 아쉬운 분풀이 대회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