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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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의 잘못을 감시하고 규찰했던 조선시대 사헌부. 우두머리는 종2품의 대사헌이었다. 그런데 대사헌의 관복 흉배는 문관들이 차는 것과는 달리 ‘해치’를 새겼다. ‘해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사헌부 관리들은 해치관(冠)을 썼다고 한다. 법을 다루는 관부, 공정을 지켜주는 상징을 해치로 삼은 것이다.

사헌부 관리들이 궁궐을 드나들 때는 해치상(像) 꼬리 부분에 손을 얹는 관습이 있었다. 공명정대한 판단을 다짐하는 의식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명 대사헌으로 회자되는 인물은 누구일까. 필자는 명재상이기도 했던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을 꼽고 싶다. 그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태종의 사위인 부마 조대림(趙大臨)이 역모에 연루된 사건이 일어났다. 조대림은 개국공신이자 영의정 조준의 아들로 당시 막강한 실세였다.

그런데 임금으로부터 사건을 다루지 말라는 명이 내려 왔다. 맹사성은 대사헌으로 임금의 명을 거역한다. 왕의 부마를 구금하고 철저하게 조사했다. 태종의 노여움이 극도로 달해 맹사성은 대사헌 직에서 축출됐다.

맹사성은 자신이 태종으로부터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도 대사헌 직분을 책임감 있게 수행한 것이다. 그는 고향 아산으로 내려가 평범한 농부가 됐다. 나중에 세종은 그를 예조판서로 발탁했으며 좌의정에 승진시켰다.

공정을 위해 왕명도 거역할 줄 아는 기백을 높이 산 것이다. 맹사성이 조선 최고의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활은 청백해 살림을 늘리지 않았으며 식량은 늘 관에서 지급하는 녹미(祿米)로 했다. 출입할 때에는 소(牛)를 타고 다녔는데 사람들도 재상인 줄을 알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중국 노나라 재상 공의휴(公儀休. 史記 循吏傳)의 고사가 생각난다. 공재상은 평소 생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지인이 축하인사차 재상 댁을 방문하면서 생선을 사왔다.

그런데 공의휴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무안한 지인은 “재상께서 생선을 좋아하시면서 왜 사양하십니까?” 공재상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네. 재상을 하고 있으면 그 봉록으로 생선을 사 먹을 수 있지. 하지만 자네 생선을 받아 오해를 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봉록이 없어질 테니 생선을 계속 먹을 수 없지 않겠나….’

수산업자를 자처한 한 사기꾼이 정치권에 깊숙이 간여, 종횡무진 로비를 한 것이 탄로나 나라가 시끄럽다. 그는 국내 메이저급 언론계 전 현역인사들에게도 손을 뻗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수사와 기소를 지휘했던 박영수 특검도 포르쉐를 받아 전격사퇴하고 말았다. 특검팀 일원이기도 했던 A부장검사는 김씨로부터 고가 시계와 현금 등을 제공받은 혐의로 입건됐다. 국민의 눈에 강직, 청렴의 상징으로 보였던 특검의 포르쉐와 금품 수수 사건에 국민들의 실망도 크다.

썩은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데도 국민들에게 사과는커녕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이 법과 정의를 외치고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한 특검의 얼굴인가.

정치권과 특검, 언론계를 뒤흔든 사기꾼은 자신이 몇 천억대의 재산가이며 수산업자라고 자처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결과 그는 조폭 출신으로 재력이 모두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검 책임자가 검은 손의 유혹을 경계 안 한 것이 화근이었다. 노나라 공의휴의 생선 고사나 냉철했던 대사헌 맹사성의 일화에서 취할 점이 많다. 특검 인사들에게 ‘해치배지’라도 달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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