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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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비숍 여사가 1897년 11월에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의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는 지금도 되새길 만하다.

첫째, 비숍은 외국인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조선인의 게으름과 가난을 정면 반박했다. 비숍은 ‘조선은 가난한 국가가 아니다. 자원은 고갈된 것이 아니라 미개발 상태이다. 조선인은 근면하며 거지는 없다’고 평가했다.

둘째, 비숍은 조선을 ‘약탈 국가’로 보았다. “조선 사람들의 힘은 휴지 상태이다. 상위계층은 부조리에 마비돼 있으며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중간 계층은 출세의 길이 막혀 있으며 하위 계층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조선은 모든 면에서 미흡하고 열악하고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계층적 특권, 국가와 양반들의 수탈, 불의(不義), 불안정한 수입, 개혁되지 않은 다른 모든 동양 국가들이 기초하고 있는 최악의 전통을 수행해온 정부, 책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공식적 약탈자들, 대궐과 대단찮은 후궁에 칩거하며 쇠약해진 군주, 국가 내의 가장 부패한 사람들 간의 밀접한 연합, 이해관계가 얽힌 외국의 상호 질시, 널리 만연돼 두려움을 주는 미신이 이 나라를 무기력하고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겪은 첫인상이었다. (중략)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지겹도록 반복했다. (중략) 지방관과 양반들의 수탈로 말미암아 경작지가 해마다 감소하는 농부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들은 겨우 하루 세 끼 식사가 가능한 정도이다. (중략) 여러 가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이다.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셋째, 비숍은 조선의 미래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고 봤다. 그러면서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가망 없는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교육에 의해, 생산계층 보호에 의해, 부패한 관리들의 처벌에 의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일에 대해서만 댓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정부의 모든 공직의 업무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국가가 건립돼야 한다. (중략) 비록 1897년의 눈에 띄는 퇴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의 미래에 대해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로 조선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할 때 외부로부터라도 개혁돼야 한다. 둘째로 군주의 권력은 엄중하고도 영원한 헌법의 아래에 놓여야 한다.”(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461~465)

하지만 비숍의 제안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매관매직 풍조는 여전했고 개혁은 후퇴했으며, 독립협회가 해산당한 뒤 대한제국은 견제 없는 고종 황제 1인의 전제국가였다.

넷째, 비숍은 1897년 말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본은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도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증대했다. 반면에 러시아는 엄격한 기회주의 정책을 추구했다. 영국은 불간섭 주의로 정치적 영향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다. 조선은 혼자 힘으로 지탱될 수 없으며,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이나 러시아의 보호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한편 비숍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조선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처음 조선에 대해 내가 느꼈던 혐오감은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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