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not caption

지난 26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씨(59세)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일한 사람들과 유족은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과중했고 관리자들의 갑질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2년 전에도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졌다.

유족과 동료 노동자, 노동조합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정 총장에게 사과와 특단의 조치, 재발방지책을 요구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오랫동안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왔다. 코로나로 기숙사 거주 학생들이 밖에 나가는 비율이 크게 줄고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등의 식습관의 변화로 청소 업무가 폭증했다.

새로 관리팀장을 맡은 사람은 군대식 지시와 강압적 통제를 했다.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필기시험까지 봤다. 속해 있는 조직 또는 팀의 이름을 쓰라고 했고 해당 조직이 개관한 연도나 건물 건축연도를 물었다. 심지어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나 한문으로 써 보라고 하기도 했다. 심지어 성적을 공개해서 성적이 낮은 사람에게 모욕을 주기까지 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없던 회의를 소집해서 드레스코드를 주문하기도 했다. 남자 미화원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고 가장 멋진 모습으로 참석하면 됩니다”, 여자미화원은 “회의 자리에 맞게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해 주시면 됩니다”는 글을 공지했다. 필기구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을 주기도 했다.

문제의 관리자는 청소검열을 했고 하지 않던 제초작업까지 시켰다. 회의 때 제초작업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러면 외주를 주고 시간 외 수당을 깎겠다’고 말했다. 지금 받는 것도 초저임금인데 이 임금마저 깎겠다니!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필기시험을 보는 건 차별적 행위이자 인권침해적 행동이다. 건물 청소하는 사람들, 특히 연령이 높은 여성들 가운데는 우리글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거나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초등학교 문턱을 밟아 보지 못했거나 초등학교를 중퇴한 사람은 물론 초등학교를 마쳤거나 중학교를 중퇴한 사람 가운데도 필기시험을 친다고 하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처음 직원으로 뽑을 때 필기시험을 주기적으로 본다고 했다면 대부분 취직을 포기했을 거다.

답을 영어나 한문으로 쓰라고 하면 영어나 한문을 평생 배워보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어나 한문을 공부한 지 오래된 사람도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영어나 한문을 조금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건물 이름을 영어나 한문으로 쓰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문해교육(문자해득교육)하는 사람들은 “언어는 인권”이라고 말한다. 우리글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존재하는 건 국가기관이 교육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지 못한 결과다. 글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포함된 청소노동자들에게 필기시험을 보고 그것도 영어나 한문으로 쓰라고 하기까지 했으니 문제를 받아본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서울대는 학교를 대리하는 관리책임자와 관리직 직원들이 노동탄압과 강도 높은 갑질을 자행하고 있었음에도 제지하지 않았다. 글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필기시험을 치거나 반성문을 쓰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 또한 실행됐다. 글 모르는 사람을 모욕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인권침해와 차별, 모욕을 동반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오세정 총장은 학교를 대리하는 관리자가 노동권을 탄압하고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고 고인과 유족, 청소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관리책임자를 강력 징계해야 한다. 사법당국은 노동탄압과 갑질을 행한 관리자들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 고인에 대한 산재는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1995년까지는 정규직이었다. 서울대는 법적 지위를 불안정하게 하고 갑질에 상시 노출시키는 하청구조 속에 노동자들을 묶어놓지 말고 모든 청소노동자를 기존 정규직과 차별 없는 온전한 의미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재발방지 대책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