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저울

김금용(1953 ~  )

중국문화혁명의 잘못됨을 지적한 여공무원 장지신(張志新)
그녀의 무게를 양팔 저울에 올리면 전 국민의 무게와 같았다.
목구멍이 잘리고도
강청을 포함한 4인방의 부정부패를 고발했던 그녀
공개 총살당한 그녀의 무게는
당시 전 중국 국민의 무게와 같았다

 

[시평]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에 불어 닥쳤던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줄여서 ‘문화대혁명’이라 불리는 사건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파괴 운동이었다. 자국의 문화를 자국민의 손으로 자멸시킨 전례 없는 대사건이었다. 대약진의 재앙적 실패 이후, 권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낀 마오쩌둥은 공산당과 중국, 중국인에 대한 지배력을 틀어쥐기 위한 새 운동을 준비했다. 바로 1966년 문화대혁명이다.

학교의 문을 닫아버렸고, 학생들로 하여금 홍위병이 되어 ‘부르주아 전문가’로 일컬어졌던 교사, 교장, 교수들에 대항하는 혁명투쟁을 벌이도록 선동했다. 병원에서는 의사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하도록 강요당했고, 청소부들이 환자를 돌보았다. 홍위병들은 군부대의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를 들고 싸움을 벌였다. 1969년에 인민해방군이 질서를 회복하기 전까지 온 나라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 직전까지 치달아 있었다. 문화대혁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장즈신(張志新)이다. 공산당원으로 랴오닝성 공산당 위원회 선전부 간부였던 장즈신은 39세였뎐 1969년 8월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을 비판했다가 감옥에 갇혔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장즈신은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을 철회하지 않았다.

6년 가까이 수감됐던 장즈신은 1975년 정신분열증에 걸렸고, 그해 4월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녀가 총살당하기 전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칠 것이 두려워 칼로 기도를 잘라 소리 내지 못하도록 하고 형장으로 끌고 갔다. 그녀가 죽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문화대혁명은 종료됐다. 처벌과 죽음이 무서워 아무도 입 밖으로 비판의 말을 못 꺼낼 때, 용감히 비판의 소리를 한 장즈신, 그녀의 무게는 입 열지 못하는 중국인 10억 인구, 그 무게보다 더 무겁다. 아는 것과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중국의 인구 10억이 알면서 말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실천한 장즈신, 그녀의 무게를 양팔 저울에 올리면 전 국민의 무게 그 이상이다. 자신의 이익도 자신의 아픔도 자신의 죽음도 모두 건 그 무게. 인류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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