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한 시대에 유행하는 말들은 그 시대를 대변하고 상징하는 척도입니다. ‘진짜 참기름’에 이어 참교육 참사랑이라는 단어가 온통 세상을 도배질 하더니 최근에는 ‘대박’이란 도박장 은어를 대통령부터 전 국민은 물론 신성한 대학 강단의 교수님들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뜻있는 이들은 통탄할 일입니다 석가세존께서 팔정도에서 正語를 말씀하셨고 공자께서는 正名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마 지금의 이 난세에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가르침이 아닐까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말이 불순해졌습니다 ‘순(順)’은 온순하다, 화하다, 또는 바르다는 뜻이 있습니다만 원뜻은 도리를 따르다 이치를 거스르지 않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의 호칭을 보면 실로 가관입니다.

남편되는 이를 아빠니 오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부부 사이에 태어난 2세들은 그 부모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옛날 어른들의 함자나 휘자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부르는 세상이 된 지 오래됩니다. 예부터 이 땅에는 사람이 태어나면 어릴 때는 아명을 불러주고 관례를 마치면 성년이 되었다고 해서 본이름을 정해 주었습니다. 定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엔 천명이 들어 있다고 해서 귀하게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아니하고 자나 호를 지어 주로 호를 불러 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얼이요 정신입니다.

얼마 전에 남원 인월 고향에 갔더니 친구 형님이 개신교 목사이신데 저보고 선비정신에 대해 목사님들께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하시더군요. 개신교가 우리의 얼과 정신을 등한시 하고 간과한 면이 없지 않다고 하시면서요. 자녀들 이름에는 서양의 성자들 명호를 지어 주는 데 익숙하면서 우리의 호로 불러 주는 문화에는 영 배타적인 김해에 사시는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느 여성분의 씁쓸한 기억이 있던 터라 여간 반가운 제안이 아니더군요.

우리 관광지 어딜 가 봐도 거리낌 없이 옛 어른들의 함자를 함부로 명기하거나 대중매체에서는 심지어 옛 임금님의 휘자나 위인 고승들의 성함이나 호를 버릇없이 마구 부르고 씁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직계 조상님들의 휘자도 감히 부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최소한 휘자를 불가피하게 부르거나 써야 할 때는 무슨 ‘姓’가에 함자는 ‘무슨’자 ‘무슨’자 라고 하거나 임금님께는 묘호를 붙여 부르거나 ‘누구누구 선생’ 또는 어른 고승께는 ‘무슨 스님’ 또는 ‘선사님’ ‘대사님’ 등 우리가 조금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문제들입니다.

무례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례는 무지와 무식에 기인합니다. 서양문물에 경도되고 자본주의가 우리의 혼과 얼을 잠식한 지 한 세기가 조금 지났지만 참으로 심대하고 광범위하게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들어와서는 안될 일본과 미국의 저질 문화가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홍수 속에 그 문물을 제정신 차리고 주체적으로 소화하지 못한 탓도 있으나 우리의 근본정신과 얼이 올바로 서지 못한 상황에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정신과 얼이 빠지면 내실이 망하게 됩니다. 내실이 없으면 겉을 치장하고 꾸미게 됩니다. 그래서 질보다는 양이 많고 큼에 가치를 둡니다.

요즘 불가에는 옛날에는 생소한 명칭이 생긴 지 오래됩니다, 절집 어디를 가든 “큰스님! 큰스님!” 합니다. 큰스님이 계신다면 어딘가에는 작은 스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어색한 명칭이 아닌가요? 스님이란 칭호 속에 이미 존경과 인품이 배어 있어 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아름다운 호칭입니다. 스님이면 다 됩니다. 옛적에 노고추(老古錐)란 경칭이 있긴 했습니다. 노덕에 대한 존경의 의미죠. 노고는 노대원숙(老大圓熟)이란 뜻으로 사가의 선기가 예민하기 날카로운 송곳과 같다고 해서 노장 또는 노은사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서려있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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