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프랭스=AP/뉴시스] 7일(현지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이날 새벽 암살당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관저 부근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새벽 모이즈 대통령이 관저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암살당하고 부인도 총격으로 중태에 빠졌다. 클로드 조셉 아이티 임시 총리는 국민에게
[포르토프랭스=AP/뉴시스] 7일(현지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이날 새벽 암살당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관저 부근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새벽 모이즈 대통령이 관저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암살당하고 부인도 총격으로 중태에 빠졌다. 클로드 조셉 아이티 임시 총리는 국민에게 "진정하고 평정을 유지해 줄 것"을 호소했다.

대통령, 사저에서 괴한에 살해

“용의자, 미 마약국 요원 행세”

전역 계엄령·비상사태 선포

정치공백·사회혼란 심화 우려

[천지일보=이솜 기자] 새벽 1시가 넘어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자 아이티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의 고요가 깨졌다. 주민들은 즉시 나라를 괴롭혀 온 두 가지 소란인 조직 폭력이나 지진을 떠올렸으나 이날 새벽엔 전혀 다른 현실이 나타났다. 대통령이 살해된 것이다.

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사저에서 괴한들의 총에 암살당했다.

이번 사건으로 수개월 동안 아이티를 삼킨 혼란과 폭력이 심화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국가 중 하나가 무법 상태에 빠질 위험도 커지고 있다.

클로드 조제프 아이티 임시 총리가 암살 이후 아이티 지도부를 맡았다. 그는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포르토프랭스(아이티)=AP/뉴시스] 6일(현지시간) 괴한 습격으로 암살당한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의 지난해 2월7일 모습.
[포르토프랭스(아이티)=AP/뉴시스] 6일(현지시간) 괴한 습격으로 암살당한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의 지난해 2월7일 모습.

◆용의자 6명 잡아… “외국 용병 소행”

CNN방송, AP통신 등에 따르면 조제프 임시 총리는 이날 새벽 1시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모이즈 대통령 사저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침입해 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영부인 마르틴 모이즈 여사도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아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아이티 정국 혼란과 관련된 암살일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암살의 배후를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정이 될 전망이다.

바나나 수출업자 출신인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임기 1년 대부분을 야당과 정치적 전쟁을 벌이며 보냈다.

야권은 모이즈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올해 2월 이미 끝났다며 자체 임시 대통령을 지명하는 등 퇴진을 압박해왔고 시위대도 모이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무장 폭력배들은 거리를 장악해 가난한 이웃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수천명이 피난을 가게 만들었다. 심지어 학생들과 교회 목사들이 예배 중간에 납치되기도 했다.

퀴스키야 대학의 재키 루마르케 총장은 “우리는 완전히 혼란스럽다”며 “국가가 이렇게 약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수백만명의 아이티인들은 누가 대통령을 죽였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걱정하며 하루 종일 라디오와 TV 주변에 모여 들었다.

레온 샤를 아이티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암살에 연루된 용의자 4명이 총격전에서 경찰에 살해됐고 2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가해자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며 총격전을 통해 그들을 사살하거나 체포할 수 있도록 쫓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보시트 에드몽 미국 주재 아이티 대사는 이번 사건이 “외국 용병과 전문 킬러들, 특공대원에 의해 저질러진 ‘잘 짜인’ 공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용의자들이 자신을 미국 마약 단속국(DEA) 요원이라고 밝혔으나 그들은 가짜 DEA였고 전문 킬러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에드몽 대사는 보안 카메라 영상을 근거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포르토프랭스=AP/뉴시스]작년 11월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베르티에르 전투 제217주년 기념식이 열려 행사 후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중 한 명이 불타는 장벽에 의자를 던지고 있다.
[포르토프랭스=AP/뉴시스]작년 11월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베르티에르 전투 제217주년 기념식이 열려 행사 후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중 한 명이 불타는 장벽에 의자를 던지고 있다.

◆계엄령 선포에도 ‘통제 불능’ 우려

역사적으로도 많은 상처가 있는 아이티는 최근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남긴 정치적 공백이 폭력 사태를 부채질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구 강대국들은 아이티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미국은 1915년부터 1934년까지 이 나라를 점령했고 20세기와 21세기의 쿠데타들은 서구세력의 지원을 받아왔다.

특히 프랑스는 아이티와 길고도 힘든 관계를 맺고 있다. 200여년 전 아이티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프랑스 노예 식민지를 끝내기 위해 싸웠다. 18세기 전환기에 노예 폭동으로 시작한 것은 결국 1803년 나폴레옹 군대의 놀라운 패배로 이어졌다.

가까스로 식민지에서 벗어난 아이티의 고통은 끝이 아니었다.

‘파파 독’이라 불린 프랑스와 뒤발리에와 아들인 ‘베이비 독’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20년이 넘게 독재 정권을 이끌었다. 이후 1990년 신학자 출신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1년도 채 안 돼 쿠데타로 물러났다.

11년 전 파괴적인 지진 후 나라는 재건되지 않았고 수십억 달러의 해외 원조를 받았지만 주민들은 더 가난해졌다고 호소한다.

조제프 임시 총리는 아이티 전역에 계엄령을 선언하고 국가의 안보 상황이 경찰과 군대 통제 하에 있다고 했으나 국제 관측통들은 상황이 빠르게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건 후 은행과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대학 교실은 텅 비었으며 시장에는 여성이 없고 물건을 파는 길목에도 눈에 띄게 사람들이 줄었다.

계엄령 선포에 따라 경찰과 보안 요원들은 15일 동안 자택에 들어가거나 교통을 통제하고 암살범 체포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한 모임은 금지된다.

그러나 조세프 총리가 이 일을 할 권리가 있는지 아니면 나라를 운영할 권한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아이티는 프랑스어로 개정된 하나의 헌법과 크리올어로 된 헌법이 있는데 두 헌법 모두 임시 총리를 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제프 임시 총리는 자신이 현재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으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는 불분명하다고 NYT에 전했다. 질서 확립을 도울 수 있었던 최고 법원의 수장은 지난 6월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심지어 의회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모이즈 정부는 하원 전체의 임기가 1년도 더 지났지만 선거를 실시하지 않았다. 아이티 상원의원 30명 중 10명만이 최근 충원됐다.

이같이 만성적인 불안정으로 아이티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및 도미니카공화국에 기반을 둔 가장 큰 디아스포라를 가지고 있다.

미 마이애미의 아이티 사회 지도자인 레오니 에르만틴은 “해외의 아이티인들은 충격과 절망에 빠졌다”며 “그를 지지하지 않던 우리들에게도 이것은 정권교체의 결과로 상상했던 게 아니다. 디아스포라는 슬픔으로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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