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산업의 명암 <1>

 

수출 20% 차지… 9년째 1위
삼성전자·SK, 메모리 1·2위
시스템반도체, 메모리 ‘3배’
파운드리 1위 TSMC의 질주
‘설계 기반’ 팹리스 육성 절실
정부 정책 ‘용두사미’ 안돼야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반도체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일상 속에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비롯해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까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은 전자기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면서 9년째 수출 1위를 유지 중이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 격화되면서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자 안보 전략 무기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일본, 대만, 중국, 유럽 등 사실상 전 세계가 미래의 패권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기술력 확보 경쟁에 뛰어 들고 있다.

◆韓, 메모리 반도체 최강국

반도체는 전기를 전하는 성질이 도체(導體)와 부도체(不導體)의 중간정도인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둘로 크게 나뉜다. 또한 시스템 반도체는 팹리스(설계 전문)와 파운드리(위탁제조 전문)로 나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를 설계부터 제작까지 다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이다. 2019년 기준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3067억 달러로 메모리반도체(1116억 달러) 분야의 약 3배에 달했다.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컴퓨터, 스마트폰, 각종 웨어러블 기기부터 냉장고, 드론, 자동차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는 만큼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를 지난 30년간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켜왔다. 지난 2020년 기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데이터 단기 저장) 점유율 71.1%, 낸드플래시(데이터 장기 저장) 점유율 44.9%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원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D램은 글로벌 시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고, 낸드 메모리도 잘하고 있다”며 “SK하이닉스의 인텔 낸스사업부 인수는 메모리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메모리는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취약

하지만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취약하다. 한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반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대에 그치고 있다.

류성원 전령련 산업전략팀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보유했지만, 비메모리 부문의 경쟁력은 선진국의 60% 수준에 그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가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TSMC는 이 중 50% 이상의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이 분야 2위지만 격차가 커 쉽지 않은 경쟁을 벌이고 있다. TSMC는 매년 30조원 이상 투자에 나서고 있는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는 연 10조원 안팎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열고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통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당시 2030년까지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133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5월 133조원을 투자하려던 계획을 확대 수정해 총 171조원을 해당 분야에 쏟아붓기로 했다. 늘어난 38조원 전액은 파운드리 몫으로 TSMC를 따라잡기 위한 목적인 셈이다.

하지만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의 벽을 넘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부문의 전체 투자 규모는 삼성전자가 더 많지만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부문에 투자하는 규모는 작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TSMC와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 게 삼성전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한국의 첨단 파운드리(10나노 이하 공정) 점유율은 40%, 일반 파운드리 점유율은 18% 그리고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은 2.3%에 그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 3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DSR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세계최초 EUV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 3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DSR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세계최초 EUV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팹리스 시장 점유율 1% 미만

팹리스 경우 글로벌 상위 50개 팹리스 기업 중 한국 기업은 전무하다. 한국의 시장 점유율도 1% 미만에 그치고 있다. 팹리스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위해서 고도의 공학적 전문지식이 필수적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팹리스는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한국은 대만,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뒤지고 있다. 한국의 팹리스 업체는 약 150개로 중국과 비교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비메모리에서도 제조 기반의 파운드리뿐 아니라 설계 기반의 팹리스를 육성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정부가 대규모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030년까지 반도체 전문인력 1만 7천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산업현장에서 투입할 전문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안 전무는 또 “정부가 기업이 투자 여력을 높일 수 있도록 세액을 지원하고 전기, 용수, 배수 등의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스템반도체 강국은 미국이다.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무려 60%로 시스템반도체 상위 15대 기업 중 인텔(26%)을 포함한 9곳이 미국기업이다.

시스템 반도체란 디지털화된 전기적 데이터를 연산하거나 제어·변환·가공 등의 처리 기능을 수행하는 전자소자다. 시스템 반도체는 2025년에 시장규모 374조원으로 연평균 7.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65%는 시스템 반도체로 메모리 반도체 보다 더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치열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제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 업체에 파격적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의 정부 주도 지원, 대만 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큰 위협을 기업들이 느끼고 걱정하는 상황이다.

특히 TSMC는 최근 대만과 미국에 이어 일본으로 반도체 영토를 확대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화웨이 제재 등 미중 무역분쟁 속에서 발빠르게 미국 편에 서며 미국의 환심을 샀고, 최근엔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을 총 6개 라인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류성원 팀장은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이 반도체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도 반도체 분야 경쟁력 강화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며 “정부도 반도체 산업육성의지를 표명했지만,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