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한국인의 특성을 제대로 아는 것 같았다. 로게 위원장은 평창의 동계 올림픽 유치 성공에 관해 “Patience and perseverance have finally prevailed(인내와 끈기가 마침내 이겼다)”라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인내와 끈기’가 한민족의 정서라는 것을 마치 사전에 안 듯한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따져보면 로게 위원장의 말에는 3번째 도전 끝에 뜻을 이룬 평창과 같이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도 이번 탈락을 교훈삼아 포기하지 말고 다음에도 동계올림픽에 도전하라는 뜻이 짙게 배어있었다.

로게 위원장의 이 말을 들으면서 고교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생각이 났다. 국문학자 조윤제 선생은 한국인의 민족적 특질을 ‘은근과 끈기’라고 규정하고 우리의 생활 곳곳에 담긴 정서가 이러한 기질을 방증한다고 했다. ‘인내와 끈기’는 ‘은근과 끈기’와 정서적으로 맞아 떨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하던 시절 한국인들은 은은하고 끈질긴 삶의 역사를 일구며 살아왔다. 한국의 올림픽 역사도 ‘은근과 끈기’의 역사, 바로 그 자체였다. 지난 60여 년간 멀고도 험난한 올림픽 행보를 걸어왔던 것이다. 특히 동계 올림픽 역사는 끝없는 도전 정신이 빛났다.

1948년 1월, 단 5명뿐인 초미니 선수단이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광복 후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처음으로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기를 앞세워 출전했다. 그 이전 한국인이 일본 이름을 달고 올림픽에 출전한 대회는 1932년 LA 올림픽이 처음이었다. 생모리츠 대회에는 이효창, 문동성, 이종국, 최용근 등의 선수가 출전했으나 경기력의 차이가 워낙 커 참가하는 데 의의를 뒀다.

하계 올림픽에선 처음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역도의 김성집 선수가 첫 메달을 획득했으나 동계올림픽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걸렸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했다.

계속된 도전 끝에 첫 메달은 44년 만에 나왔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 종목에 출전한 김윤만이 은메달을 목에 걸어 새 역사를 썼다. 이 대회서 한국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쇼트트랙을 발판 삼아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등 4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쇼트트랙에서 그동안 낚은 올림픽 금메달만 19개나 돼 한국은 쇼트트랙의 최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쇼트트랙은 순발력과 코너링이 승부의 주요한 관건으로 작용하는 종목이어서 한국인에게 아주 유리했다. 너무 많은 금메달을 따니 동계 올림픽 첫 금메달을 누가 땄는지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인터넷 자료 검색을 찾아보고 나서야 김기훈이 알베르빌 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딴 것을 알 수 있 었다.

10년 전 인구 4만 7천 명의 조그마한 지역도시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처음 나설 때 과연 그게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엄청난 시설 투자로 크고 부유한 선진국의 전유물인 동계올림픽을 평창이 떠맡기에는 크게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이 매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평창은 동계올림픽 유치에 무서운 집념을 보였다. 강원도민은 평창군민과 합세해 동계올림픽 유치의 당위성을 각국 올림픽 위원회와 IOC 위원들에게 집요하게 홍보했다. 그 효과가 점차 가시화됐다. 2003년 체코 프라하 IOC 총회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2차 투표에서 캐나다 밴쿠버에게 아깝게 밀려 2위를 해 가능성을 보였고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서도 다시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다가 2차 투표에서 러시아 소치에게 뒤져 2위를 했다. 최선을 다하고도 거푸 2번 유치에 실패했을 때 평창도 울었고 대한민국도 울었다.

호재는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찾았다. ‘빙상의 꽃’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세계 최고의 점수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삼총사가 난공불락이라던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해 빙상 한국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쇼트트랙에서만 강국이야기를 들었던 한국은 바야흐로 동계 스포츠 강호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이번 남아공 더반 IOC 총회에서도 이들 4명의 금메달리스트들은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 더반 IOC 총회 1차 투표에서 평창 올림픽의 유치 성공은 지난 1995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가 2002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며 3번 도전 끝에 올림픽 유치를 한 것은 2016년 브라질 리오데 자네이로 올림픽 다음으로 평창이 영예를 안았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성공은 60여 년에 걸친 대한민국 올림픽 집념이 빚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온 한민족의 특질인 ‘은근과 끈기’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정신에도 배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 등 세계 체육계 인사와 미국 등 해외언론 등도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를 널리 인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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