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누가 정치적 중립성을 짓밟고 있나
[정치평론] 누가 정치적 중립성을 짓밟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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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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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공공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은 더욱 중요하다. 대통령 권력에 따라 공공기관의 역할이 휘둘릴 수 있으며, 자칫 국민의 이익이 집권세력의 이익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교사 등 정치인이 아닌 공적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배경이다. 하물며 국가권력 감시는 물론 수사와 감사 업무를 맡은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민주정치의 당연한 요구이며,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의 보루이기도 하다. 감사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그 상징격이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을 조직의 생명처럼 사수해야 할 사정기구의 수장들이 잇달아 대선출마에 나서는가 하면 또는 출마를 고민하는 모습이다. 먼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그간의 좌고우면 끝에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 했다. 검찰청법은 검사가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서, 그리고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후배 검사들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윤 전 총장의 대선 직행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윤석열의 검찰조직은 정치권에서도 ‘검찰당’이란 비난까지 나왔던 터라 향후 윤 전 총장의 언행이 더없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윤 전 총장은 끝내 대선 출마에 나섰다. 검찰 조직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후배 검사들을 배려하라는 조언이나 충고는 통하지 않았다. 인기 절정의 여론조사에 매몰된 ‘정치적 탐욕’ 앞에 주변의 우려와 국민적 기대는 별 의미조차 없었다. ‘정치검사 윤석열’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비극적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설사 그 지지자들이 ‘우리 편’이라며 큰 박수를 보낼지라도 윤 전 총장의 ‘대선 직행’이 검찰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검찰에 남은 후배 검사들도 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검찰총장직에 오르고, 또 검찰총장이 되면 어떻게 해야 국민적 인기를 얻을 수 있으며 곧바로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는지를 윤 전 총장이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검찰의 비극이요,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제 ‘정치인 윤석열’이 국민 앞에 나섰으니 앞으로 차근차근 그 면면을 검증해 볼 일이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상도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사정없이 짓밟은 ‘당사자’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추미애 전 장관 탓만 할 수도 없게 돼 버렸다. 애초부터 정치적 탐욕을 드러낸 ‘정치검사 윤석열’을 견제하지 않고서는 검찰조직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고 추미애 전 장관이 말한다면 그땐 윤 전 총장이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그때도 자신의 대선 참여가 문재인 정부 탓이요, 추미애 전 장관 때문이라고 할 것인가. 윤 전 총장의 항변은 이제 논리도 설득력도 없게 돼버렸다. 국민의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도 비극적 모습으로 각인될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한 대선 주자로 승승장구하자 검찰 못지않게 정치적 중립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감사원도 나섰다. 문재인 정부와 ‘원전 정책’을 놓고 각을 세웠던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8일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사퇴했다. 심지어 대선 참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국민 여론도 출렁였다. 최 전 감사원장 자신도 대선 참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최 전 감사원장이 윤석열의 ‘대체재’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이른바 야권의 ‘플랜B’를 염두에 둔 중도 사퇴였다는 뜻이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검찰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근거도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심지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역대 어느 감사원장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감사에 임했던 것이며 그 결과 국민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감사원장으로서 강단 있는 모습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인기가 조금 오르자, 또는 윤석열 전 총장 지지율이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최 전 감사원장은 스스로 임기를 포기했으며, 대선에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는 정말 충격이다. 원전 정책을 놓고 문재인 정부와 대립했던 속내가 결국 자신의 정치적 탐욕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인가. 중도에 사퇴하고 곧바로 대선에 출마하려는 정치적 목적이었다는 것인가. 정말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사정기구 수장들이 이런 식으로 정치판에 뛰어드는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고도 역겹다. 어쩌다가 한국정치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인지 참담한 심경 가눌 수 없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지낸 사정기구 수장들의 정치 참여 저변에는 한국 정치의 구조화된 적폐, 즉 ‘진영 대결’이 자리 잡고 있다. 한 쪽이 반대쪽을 때리고 공격하고 짓밟아야 승기를 잡는 식의 ‘대결 정치’는 이미 일상화 돼버렸다. 문재인 정부를 때리면 때릴수록, 싸우면 싸울수록 반대 진영의 박수를 받는 식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그랬다. 혹여 정권이 교체된다면 그 정권에서도 제2의 윤석열과 최재형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과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사실상 끝난 것과 다름 아니다. ‘임기 보장’ 같은 얘기도 별 의미가 없게 됐다.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또는 대선이든 한 쪽 진영의 여론을 자극한 뒤 뛰쳐나와 자신의 정치적 탐욕을 채울 수 있는 선례가 생긴 것이다. 윤석열이 먼저 그 길을 열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이미 비극이요 불행이다. 부디 최재형 만은 그 길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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