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5>
[역사이야기]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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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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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10월에 조선을 네 번째 방문한 비숍은 ‘서울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서울은 여러 면에서 특히 남대문과 서대문 방향으로는 너무 변하여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소한 55피트(16.5M) 노폭의 도로 양쪽에는 돌로 된 깊숙한 통로와 돌의 후관으로 다리를 놓음으로써 콜레라의 근원이 되었던 지저분한 골목을 바꾸어 놓았다. 좁은 길이 넓혀지고 진흙 개울이 포장되었으며 도로는 더이상 쓰레기를 자유롭게 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도록 위생법이 발효되었으며 쓰레기는 청소부가 처리하고 있다. 지저분했던 서울은 이제 극동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서울 거리가 너무 바뀌어 1894년에 이 책을 쓰기 위해 사진을 찍어 두었던 대표적인 빈민촌의 모습이 쓸모없게 되었다.… 주한 미국공사 알렌은 1896년 가을 이후 4개월은 그가 조선에 머문 지난 12년보다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비상한 변화는 4개월 만에 이뤄졌다. 능력 있고 지각 있는 한성부 판윤 이채연과 해관 총세무사 브라운 덕분이다.” (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 448~457)

이채연(1861~1900)은 1887년 초대 주미 공사관 직원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했다. 당시 직원은 전권공사 박정양, 참찬관 이완용, 서기관 이하영, 이상재, 미국인 알렌 등이었다. 1893년까지 미국에서 지낸 그는 1895년에 농상공부 협판(차관)을 했고, 1896년엔 한성판윤이었는데 독립협회 창립 회원이었다.

영국인 브라운은 중국 북경주차 영국 공사관의 해관을 했는데 1895년에 조선에 해관 총세무사로 부임해 1896년엔 탁지부 재정 고문을 겸임했다.

영국 ‘데일리 메일’ 기자로 러일전쟁 특파원이었던 매켄지는 ‘대한제국의 비극(1908년)’에서 이렇게 적었다.

“브라운은 자기의 동의 없이 해관의 자금이 유출되는 것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 1895년에 일본은 경제 침략의 일환으로 한국에게 3백만 엔을 강제로 대여해 주었는데 브라운은 이를 갚으려고 2백만 엔을 마련해 두었으며 이미 75만 엔을 갚았다. (중략) 그가 활약한 덕분에 서울에는 새 도로가 생기고 옛길은 확장되었다.”(매켄지 지음·신복룡 역주, 대한제국의 비극, 2019, p89~90)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여전히 미신에 빠져 있었다.

“1897년 1월 조선 관리의 말을 빌리면 서울에는 몇천 명의 무당과 점쟁이가 있었다. 이 도시에서 푸닥거리로 1년에 지출되는 돈만 하더라도 18만 달러에 이르렀다. 지관에게도 막대한 돈이 지불되고 있었다.”(비숍 책, p 457)

궁궐도 미신에 심취했다. 1903년 4월에 영친왕이 마마(천연두)에 걸리자 푸닥거리를 했다. 많은 돈과 비단이 궁궐에서 빠져나갔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온다.

1904년 11월 18일에 주한미국공사 알렌은 미국 국무부에 보고했다.

“고종은 병적으로 미신에 빠져 있으며, 1895년 갑오개혁 기간 중 궁중에서 쫓겨났던 무당들이 궁중의 모든 일에 영향력을 미치고 세금까지 가로챘다. 고종은 전투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던 1904년 11월에도 러시아가 승리할 것이라는 무당들의 말들 듣고 안심했다는 것이다.”(정성화 외,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 2006, p28)

이처럼 서울의 모습은 빠르게 변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신에 빠져 있었다. 이런 것이 구본신참(舊本新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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