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김용국

나 철없던 때는
자식 때문에 죽지 못했는데
나 철들고 난 후에는
홀어미 때문에 죽지 못했네

나이 들어 죽지 못했다면
그건 순전 마누라 때문이겠네

그러고도 죽지 못했다면
하늘이 멀리 푸르러서
몸 던져도
나 거기에 닿지 못함이겠네.

 

 

[시평]

살아가다 보면, 죽음을 생각할 때가 없지 않아 있다. 무슨 계기가 있어서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계기도 없이 느닷없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 생각에 그칠 뿐 죽음을 정말 실행에 옮기는 예는 아주 드물다.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만 살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생명체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의미에 관해 나름대로 생각하고 고뇌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은 나름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왜 사는가’의 문제를 어쩌다 생각하게 되고,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시인은 죽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과 얼기설기 얽혀 있는, 가족이라는 인륜(人倫), 혹은 천륜(天倫)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철없던 때는 아직 어린 자식 때문에 죽지 못했고, 철이 들고 난 후에는 늙은 홀어미 때문에 죽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나이 들어 죽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함께 살고 있는 마누라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식, 부모, 배우자 등의 얽힘이 어쩌면 사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죽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너무 푸르러서, 몸 던져도 결코 그 먼 곳까지 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하늘이 푸르고 먼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저 멀고 푸른 하늘 마냥, 어떤 이유가 아닌, 숭고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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