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됐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얄타회담에서 조선을 남과 북으로 나눠 신탁통치를 하기로 약속했고,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이후 북한이 한반도를 적화통일 하기위해 중국과 소련의 동의, 도움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남침한다. 그렇게 6.25 전쟁은 시작됐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유공 훈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의 검지는 1951년 10월 김일성 고지 전투 당시 수루탄 내관이 터지며 날아가 버렸다. 엄지와 중지로 유공 훈장을 든 모습에서 전쟁과 분단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새겨본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유공 훈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의 검지는 1951년 10월 김일성 고지 전투 당시 수루탄 내관이 터지며 날아가 버렸다. 엄지와 중지로 유공 훈장을 든 모습에서 전쟁과 분단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새겨본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950년 12월 가평중학원에 다니던 평범한 학생은 인민군 패잔병에 의해 불에 타버린 고향 마을 가평을 바라보며 “조국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내가 그 당시에 16살이었어요. 나이가 어려서 현역으로 입대를 못하고 보조 역할을 하면서 학도병으로 참전했죠.” 그 학생이 바로 2사단 31연대 8중대로 배치를 받은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85)다.

그는 자대 배치를 받고 곧바로 화악산을 넘어가기 위해 이동하던 중 어느 골짜기에서 중공군에 포위가 돼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조그만 개울이 있고 언덕을 넘어야 북면인데 중공군들이 낮에 포위를 하고 있었어요. 전혀 몰랐지. 개울 건너서 북면을 못 넘어가도록 기관포 대여섯개를 막 쏴대는 거야. 그러고 있는데 남쪽 방향에서 피리 소리가 들리는 거야. 여기서 피리를 부니까 저쪽에서도 피리를 부는 거야. 적들이 못 넘어가도록 기관포를 쏜 거고. 그제야 군인들도 ‘아... 포위를 당했구나...’ 절망했지. 살벌했던 육박전을 거쳐 피하고 또 피했어요. 가다가 막 발에 뭐가 밟히고 그래서 보면 전사한 국군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지...”

험난한 길을 지나 가평으로 다시 돌아왔고 제천까지 내려갔다. 그곳에서 의무대로 배치돼 훈련을 받았다. 그는 제천 초등학교에서 단가(들것) 피는 방법, 환자 싣는 방법을 배웠다.

“제천에서 북진을 하면서 북한강 전투, 화천 전투, 백마고지 전투를 겪었어요. 식당 취사반을 도왔고, 부상병들 나오면 단가(들것)에 싣고 야전 병원에 옮기는 역할을 했죠. 그러다가 1951년 10월 김일성 고지 전투 때 부상을 당했어요. 이게 전쟁의 상처야. 여기도 상처가 그냥 있어.”

그는 들판에서 수류탄 내관을 발견하고 연대본부에 가져가기 위해 주워서 옮기던 중 수류탄 내관이 터져버려 검지가 심하게 다쳐 날아가 버렸고, 왼쪽 눈은 실명 당했다. 하지만 현역이 아니기 때문에 야전병원에 가지 못하고 치료약만 받아서 고향 가평으로 돌아갔다.

이후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이루어졌으며, 휴전 상태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며 사실상 무산됐다.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전쟁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지와 엄지로 조심스럽게 참전용사 유공 훈장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과 분단, 동족상전의 비극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를 되새겨본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1951년 10월 김일성 고지 전투 당시 수루탄 내관이 터지며 실명된 외쪽 눈을 가리키고 있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1951년 10월 김일성 고지 전투 당시 수루탄 내관이 터지며 실명된 외쪽 눈을 가리키고 있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의정부보훈회관 1층에서 진행 중인 6.25 사진전에서 학도의용군 참전 관련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6.25 전쟁 당시 가평중학원에 재학중이었던 그는 1951년 12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의정부보훈회관 1층에서 진행 중인 6.25 사진전에서 학도의용군 참전 관련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6.25 전쟁 당시 가평중학원에 재학중이었던 그는 1951년 12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의정부 보훈회관 6.25 참전 유공자회 의정부지부 사무실에 설치된 유공자 회원 현황을 알리는 안내판에 사망자 인원이 378명이라고 적혀 있다. 관계자는 “유공자 분들이 돌아가시더라도 모든 소식을 지부에서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연락 닿는 분들이 계실 때마다 수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의정부 보훈회관 6.25 참전 유공자회 의정부지부 사무실에 설치된 유공자 회원 현황을 알리는 안내판에 사망자 인원이 378명이라고 적혀 있다. 관계자는 “유공자 분들이 돌아가시더라도 모든 소식을 지부에서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연락 닿는 분들이 계실 때마다 수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소파 뒤에는 참전 유공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고 백선엽 장군 빈소 조문 사진, 한미연합사령관과 찍은 사진, 국가유공자 명패 등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1.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을재 6.25 전쟁 참전용사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소파 뒤에는 참전 유공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고 백선엽 장군 빈소 조문 사진, 한미연합사령관과 찍은 사진, 국가유공자 명패 등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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