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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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헬스케어 신산업을 창출하려는 민간의 시도가 좌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금융 당국까지 나서서 보험업권의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지원 사격에 나섰지만 생명윤리위원회(IRB) 문턱을 넘지 못했다. IRB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운영하는 위원회로, 생명윤리법에 의거 사회·윤리적 타당성 평가 경험과 지식을 갖춘 해당 분야 및 의료전문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교보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생명 및 손해보험사 10개사는 최근 IRB에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을 위한 ‘연구계획서 및 심의면제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IRB에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연구계획서 등을 제출했지만 취소됐다. 지난 3월에는 IRB 운영 주체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과 보험협회가 사전 협의 하에 ‘가명 처리된 환자 데이터세트의 경우, 심의 면제 대상’임을 양측이 확인했지만 IRB 심의 과정에서 심의 면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취소 처리했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지난 2013년에 제정된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보험사와 보험개발원에 비식별 처리된 환자데이터세트를 제공했다. 그러나 2017년 국정감사에서 보험사가 영리 목적으로 의료 데이터를 사용하는 문제가 지적되면서 중단된 바 있다.

지난해 1월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등 데이터 3법이 개정돼 공공 의료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뒤이어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금융 당국의 유권해석 등이 추가됐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는 의료계가 연구 목적에서 벗어나 보험사 등이 영리 목적으로 공공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는 부분에 거부감을 느낀 데 따른 것이다. 실제 의료계는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 등도 보험사만 혜택 본다며 보험사에 정보 제공을 반대하고 있다.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법적·제도적으로 보험사 공공의료 데이터 사용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데이터 접근에 제한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최근 IRB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 계속된 추가 보완 요구는 우리로선 의도적인 시간 지연 행위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보험사는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해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의료 데이터의 하나인 환자데이터세트를 활용하면 성별이나 나이 등 기본정보에 진료내역, 처방내역 등 치료 내용을 살펴볼 수 있어 이를 활용한 다양한 헬스케어 상품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 해외에서는 이 같은 공공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헬스케어 상품과 서비스가 나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보험 및 헬스케어 산업이 이를 활용하지 못해 묵은 데이터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인구구조, 생활습관 변화는 물론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환 출현 등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를 야기한다. 또한 미래 성장산업이 발전하는 데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헬스케어산업은 초고령사회를 앞둔 국내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신산업이다. 헬스케어 산업 육성과 국민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다. 개인정보는 보호돼야 하지만 익명화된 의료 정보는 적절히 활용해야 산업 발전이 정체되고 국민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 침해 및 오용의 문제 등은 시행 과정에서 엄격하게 감독하되 아예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은 성장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데이터 3법,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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