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이사라(1953 ~  )

서로
여기까지 왔는데

바깥은 사계절 지나는 동안 다 닳아버렸는데

가슴은 다 굳어 버렸는데

저녁 하늘 바라보다
문득 출렁이는 물결이 있어
눈을 감네.

뜨거운 눈물이
석양처럼 터지는

그런 날이 오네.

 

[시평]

‘부부’란 무엇인가. 비록 남남이 만났지만, 서로가 사랑을 해, 한 가족이 되고자, 가정을 이루고자 결혼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오래 오래 살아온 사람들. 그러나 10년, 20년, 아니 30년, 40년쯤 함께 살아보면, 별의 별 일들이 다 있게 마련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일과 사연을 겪으며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부부이다.

그래서 서로 보듬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보면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의 바깥은, 수많은 계절과 함께, 그 계절을 지나는 동안 모두 닳아버렸는데, 그래서 가슴은 이제 다 굳을 데로 굳어져 버렸는데. 그러나 문득 돌아다보면, 저 먼 저녁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충만한 물결 출렁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돌아보면, 근원을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저 석양의 잔잔한 눈빛.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갔어도,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미움과 아픔, 즐거움과 슬픔 모두 지녔다고 해도, 부부 그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물결 충만히 일렁이는, 그런 날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들을 ‘부부’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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