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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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이 고민했다. 올림픽은 4년 만에 한 번 열리는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일뿐더러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협력이라는 더 높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제외교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 올림픽을 시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놓고 고민은 컸다. 게다가 더 아픈 것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지난 4년간 피땀을 흘렸을 우리 대표 선수들의 눈물과 고통도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에겐 올림픽 참가 외에 그 무엇인들 제대로 된 보상이 되겠는가. 아무리 국익이 중요하더라도 우리 선수들의 꿈과 노력을 좌초시키는 그런 국익이라면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국익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면 이번 도쿄 올림픽만큼은 진지하게 보이콧을 고민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먼저 도쿄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 그 자체가 국제외교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거기에 우리 영토인 독도를 그려놓고, 한국 등 외국 손님들을 맞겠다는 발상부터 올림픽 정신을 짓밟는 ‘도발’에 가깝다. 그런 자리에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우리 대표팀이 참여하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찾아간다면 독도의 피눈물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도 쏟아질 것이다. 여기서 독도를 지켜온 우리 선조들의 통한의 역사까지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국민의 자존심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올림픽마저 역사왜곡과 정치선전의 장으로 활용하는 일본 극우 정권의 손을 들어 줄 수는 더더욱 없지 않겠는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한국은 일본의 항의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권고에 따라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삭제했다.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니어서가 아니었다. 올림픽 무대에서까지 정치 또는 외교적 논란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것이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일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젠 일본이 화답할 시간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독도를 노골적으로 도발하는가 하면, 올림픽 정신마저 짓밟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의 계속된 항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IOC의 행태도 정말 충격이다. 이런 도쿄 올림픽에 태극기를 달고 참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우리는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며칠 전 영국 콘월에서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더라도 한일 정상 간에 짧은 대화라도 있을 법했다. 그러나 끝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거부했다. 당초 합의된 약식 회담을 일본이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가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걸음을 애써 외면하는 스가 총리의 행태는 상식 밖이며, 일국의 지도자다운 기본도 갖추질 못했다.

게다가 도쿄 올림픽을 반드시 열겠다는 일본의 입장에서라도 스가 총리가 먼저 다가서는 것이 상대국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오죽했으면 일본의 보수 신문인 ‘니혼게이자이’도 사설(6월 15일자)에서 스가 총리의 행태를 비판할 정도였다.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이젠 일본에 대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행동으로도 명확해야 한다. 그럴 만큼 한국의 국력도 나쁘지 않다. 일본이 자국 지도에 독도를 넣든 말든, 스가 내각이 한국을 어떻게 대하든 말든, 도쿄 올림픽 참여를 당연시하는 것이야 말로 국민 입장에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굴욕에 가깝다.

물론 한국 정부의 입장은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식보다 더 복잡하고 총체적일 것이다. 도쿄 올림픽 보이콧 이후의 정치적 역풍도 우려될 것이다. 특히 일부 수구세력을 중심으로 거친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국의 입장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IOC와 척을 지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자칫 더 악화될 수 있는 한일관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닌 것은 아니다.

2년 전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산업의 핵심이었던 불화수소 등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전격 발표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타를 주겠다는 의지였지만 몰상식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한국은 옛날의 그 한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만 타격을 입었으며, 우리에겐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됐다. 다시 2년 전의 추억을 소환하는 것은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거듭 묻고 또 물어야 하며, 동시에 우리는 점점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마침 도쿄 올림픽에 나설 우리 야구 국가대표팀 명단이 발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가장 아픈 대목이다. 그들의 꿈을 꺾는다는 것은 참으로 못 할 일이다. 그러나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도쿄로 갈 우리 선수들이라면 도쿄 올림픽 보이콧의 취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국민적 지지와 지원이 필수다. 물론 정부 차원의 적절한 보상과 후속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그래봤자 그동안 흘린 피땀에 비하면 턱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올림픽 메달보다 더 값진 국가의 품격과 후손들의 미래 그리고 국민적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일본의 주요 언론에서는 도쿄 올림픽 도중 코로나19 확산 대응조치로 긴급사태를 재선포할 가능성이 있다는 한 연구팀의 발표가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올림픽 개막 직후인 7월 말이나 8월 초 쯤이라는 구체적인 날짜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면 도쿄 올림픽 보이콧 문제를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보고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국민적 여론이 모아졌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대표 선수들의 건강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싸구려 ‘국뽕’ 얘기로 들리면 이쯤에서 접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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