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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최근에 새로운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김응집(金應集)을 알게 됐는데, 본 칼럼에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전혀 예상치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발견하게 된 것인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5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거슬러 올라가서 1992년 종조부(從祖父) 박의서(朴義緖)의 독립운동 행적을 조사한 것이 강력한 동기부여(動機附輿)가 돼 독립운동가 발굴 활동을 해 총 10인의 독립유공자 신청서(獨立有功者申請書)를 보훈처에 제출해 그중에서 2인이 독립유공자로 추서(追敍)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21년은 의친왕(義親王)의 7남 이해청(李海晴) 황손(皇孫)의 탄생(誕生) 100주년이 되는 해가 되는데 지난 2012년 이해청의 서거(逝去) 60주년을 추모하는 칼럼을 국내 언론사로는 최초로 브레이크뉴스에 기고했다.

그런데 이해청의 생모 수은당(修恩堂) 송은점(宋恩点)의 생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오래전, 의친왕의 독립운동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최효신(崔孝信)이 떠올랐다.

최효신은 의친왕의 처소(處所)인 사동궁(寺洞宮)의 간호부(看護婦)로서 1919년 11월 발생한 대동단(大同團) 사건에 연루됐는데, 구체적으로 의친왕이 상하이(上海)로 망명(亡命)을 추진할 때 수인당(修仁堂) 김흥인(金興仁)과 함께 동행 할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사정이 생겨서 동행하지 못하고 국내에 남게 됐다.

이와 관련해 대동단 사건은 의친왕을 상하이(上海) 임정(臨政)으로 망명시켜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세울 계획이었으나 단동(安東)역에서 체포되는 바람에 그 거사가 성공하지 못했다.

최효신은 대동단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는데, 신문조서(訊問調書)에 의하면 1897(광무 1)년생으로서 17세에 조선총독부의원(朝鮮總督府醫院)에서 간호부(看護婦) 양성교육(養成敎育)을 이수했으며, 그 이후 창덕궁(昌德宮)에서 1개월 근무한 이후 다시 덕수궁(德壽宮)에서 고종황제(高宗皇帝)가 붕어(崩御)하기 전까지 근무했다.

그리고 덕수궁에 이어서 사동궁에서 간호부로 근무하다가 그만 두게 돼 개성에서 개업을 하던 중에 수덕당(修德堂)의 출산으로 산파(産婆)로 활동하였는데,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1917년 11월 22일자 기사에서 최효신이 산파 면허(産婆免許)를 취득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최효신이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결국 사동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며, 후임(後任)으로 온 간호부가 이해청의 생모인 송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송은점이 사동궁에 오기 전까지의 행적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인데, 일단 사실로 확인된 것은 성명(姓名)이 송은점이라는 것과 간호부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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