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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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러·미 정상회담이다. 현재 러·미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어서 양국 관계 개선의 전기가 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미·중 갈등의 격화와 관련해 미국이 대러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지도 주목의 대상이다.

양국 관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 초에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한 이래 악화돼 왔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동부 지역 반군에 대한 공세 계획에 대응하여 러시아가 국경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킨 것에 대해 미국은 강력히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가볍게 언급한 바 있는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강력히 반대하며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도발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의 2020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직후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지속할 것임을 천명했고 올해 4월에는 외교관 맞추방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이후 반정부 인사 나발니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도 미국은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작년 대선 부정 의혹으로 야기된 벨라루스 사태에 대해서도 양국은 대립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미국이 대러 제재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양국이 유럽 에너지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은 특히 ‘노르드 스트림 2’ 가스관 건설을 놓고 대립해 왔다. 러시아에 가장 심각한 문제인 미국의 나토 확대·강화 전략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군사·안보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지난 5월 중순 열린 외교장관 회담은 양국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회담 후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러시아와 예측할 수 있고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한다”라고 했고 라브로프 장관은 “이전 정권들에서 넘어온 치워야 할 것이 매우 많고 그것들을 치우기가 쉽지 않지만 블링컨과 그의 팀에게서 그 일을 하려는 의지를 느꼈다”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 2일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어떤 역사적인 결정이나 돌파구가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정상회담과 관련한, 양측의 물밑 교섭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미국은 그간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발트해 해저 가스관(노르드 스트림 2) 설치 공사에 대해 참여 기업들을 제재하는 등 훼방을 놓다가 최근 태도 변화를 보였다. 지난 7일 블링컨 장관은 미 의회에서 “가스관 완성은 기정사실”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나토 핵심 동맹국인 독일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것이나 결과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메시지일 수도 있다. 또한, 2024년 종료되는 국제우주정거장의 운영 기간 연장을 두고 양국은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운영 기간을 2030년까지 연장하는 것을 희망하는 데 반해 러시아는 우선 미국이 우주 관련 러시아 기업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것을 주장하며 나아가 독자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내전, 벨라루스 국내 상황 및 러시아 내 야권 인사 탄압 등과 관련해 그간의 태도를 바꾸지는 않겠으나 언급 수위를 조절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또한, 경제 분야에서는 부분적인 제재 완화 등 다소 융통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러-미 관계는 크게 보면 미국이 러시아 길들이기를 지속하고 있고 러시아는 버티는 양상이다. 중국의 노골적인 패권 도전에 미국이 대응하고 있는 동아시아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이 중국을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면 러시아를 지나치게 몰아붙여 중국과 밀착하게 하는 것이 미국에 유익한 것인지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은 이번 러·미 정상회담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5월 러·미 외교장관 회담 직후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러시아를 방문했고 왕이 부장은 6월 초 라브로프 장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미국의 일방주의 압박에 대한 양국의 연대를 강조했다. 양국은 나아가 7월 푸틴-시진핑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러 연대’에 대해 힘 빼기를 시도하고자 한다면 러·미 관계 개선을 위해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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