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사 심성락

 

▲ 악사 심성락 씨가 자신의 음악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제공: 구성조 (사)한국음악발전소 국장 제공)
국내 최초 연주자 헌정공연 펼쳐져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심성락(75, 심임섭) 씨는 대중음악과 반세기 이상을 함께했다. 그동안 일반인에게 그의 이름 석 자는 생소했다. 가수 뒤와 녹음실에서 묵묵히 악사로 지내온 그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음악인생을 살아온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악사 심 씨가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홀에서 ‘심성락 헌정공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관객을 자신의 음악세계로 초대했다. 처음엔 자신의 이름을 건 헌정공연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후배들이 마련한 자리였기에 승낙했다. 한국음악발전소(소장 최백호)가 주최한 공연은 원로 대중가요 음악인의 공로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최백호 주현미 장사익 고상지 JK김동욱 적우 등이 심 씨를 위해 출연했다.

두 달여 준비한 공연은 만족스러웠다. 관객층은 20대부터 악사의 연령대인 70대까지 폭이 다양했다. 그의 연주를 들은 관객과 출연 가수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50년 이상의 세월이 아코디언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에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공연을 마친 직후 심 씨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난달 29일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부근 어느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광진구와 송파에 거주하는 6.25전쟁 피란민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공연 마지막에 ‘꿈에 본 내 고향’을 연주했죠. 제가 노인네이니까 그들의 마음을 알지 않겠어요? 연주를 들은 그들이 각자 고향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선곡했죠.”

공연명은 ‘심성락 헌정공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여기서 ‘바람의 노래’는 아코디언의 주름 주머니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를 뜻한다. 공연명에서도 볼 수 있듯 심성락을 아코디언 악사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그는 “아코디언을 많이 다뤘을 뿐이지 전자오르간도 연주했다”며 아코디언 악사로만 규정짓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그는 음악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3년 전에는 일본 도쿄돔에서 연주했다. 이때 황홀경을 느꼈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든지 음향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에서 연주하기를 꿈꾼다. 심 씨에게 도쿄돔은 꿈의 연주장이었다.

“도쿄돔에서 연주하는 그 기분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어요. 감동 그 자체입니다. 아쉽게도 국내엔 음향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이 없어요. 일본과 우리나라의 음향 기술은 100년 정도 차이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심 씨는 평생 음악을 듣고 살아왔기에 귀가 예민하다. 지난달 22일에 개관한 올림픽홀의 음향 시스템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대중음악에 관심을 더욱 보이면 차차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내 음악계가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음향 기술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음악방송이나 공연을 보면 비주얼적인 게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니 음향 시스템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음악인과 관객을 위한 공연장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 대중가요 작곡가 김희갑 씨가 심성락 씨에게 전하는 메시지 (사진제공: 구성조 (사)한국음악발전소 국장 제공)
악사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연주자는 무대 뒤에서 연주를 한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가수가 환호를 받는다. 자칫 잘못하면 악사가 무대의 조연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무대를 함께 만드는 것이지 주연과 조연은 없다.

그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 음향 시스템뿐만 아니라 악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반했다. 어느 추운 겨울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코디언을 들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반바지를 입은 무대감독이 악기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심 씨의 차례일 때 무대감독이 무대까지 직접 운반해줬다. 심 씨는 “음악인을 존경하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최근 그는 헌정공연 때 비목을 연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멜로디가 좋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단다. ‘비목’은 6.25전쟁 당시 상황을 담았다. 6.25전쟁 때 중1, 14세였던 그. 감성적인 멜로디와 그때 상황이 맞물렸기에 흐른 눈물은 아니었을까.

심 씨의 연주는 애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엔 먹고 살기 위해 음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심 씨 자신도 서글프단다. 이러한 심정이 파란만장한 삶과 함께 음악에 묻어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행복은 스쳐지나가는 것이다’란 문구가 제 가슴에 와 닿더군요. 음악의 행복도 곧 지나치죠. 이를 잡을 순 없습니다. 찰나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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