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not caption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청소년 7천여명과 양육자 48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청소년 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변화’와 관련된 질문 중 청소년의 49%가 학교생활이 부정적으로, 11%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응답했다. ‘사회에 대한 신뢰’ 질문에도 부정적인 응답이 44%, 긍정적인 답변은 8%였다. 교육부는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기초학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발표했다.

여성가족부의 여론조사 결과는 마치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의 역할이 미흡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뉘앙스를 갖게 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성인들도 대부분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무너져 내려 우리 삶이 불행해졌다’라고 생각한다. 폐업한 자영업자, 폭등한 부동산 문제, 여러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가 청소년보다 훨씬 더 높다. 기초학력 저하 문제도 단순히 코로나19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교육부와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해 온 잘못된 교육 정책의 산물임에도 코로나 탓으로만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공교육이 무너져 발생하는 학력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사회가 더 양극화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 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할 게 뻔한데 제대로 된 처방조차 내리지 못 한다.

어느 시대나 학생이 학교 가기 좋아했던 적은 없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로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 미흡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 탓이라고 여론몰이하는 건 부적절하다. 이번 기회에 오히려 학교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는 아이들도 많다. 2년째 가지 못한 수학여행, 수련회 등이 얼마나 간절한 추억이고 꼭 필요한 교육이었는지 절감한다.

30년 전 필자가 대학입시 공부할 때도 학교 수업이 대학입시에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필자는 공고를 다녔던 탓에 대학입시 전 과목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학교 수업으로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학교 교육이 역할을 못 하는 게 아니다. 대학입시는 사교육과 함께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좌우한다. 개인적인 노력과 공부에 대한 소질이 없으면 학교와 교사가 아무리 도움을 줘도 어렵다. 노력과 실력 부족을 마치 학교나 교사의 역할이 미흡해 생긴 탓으로 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대학입시 평가요소인 내신 성적을 얻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인관계와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다. 그게 학교의 가장 핵심적 기능이고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기능이다. 미래의 학교는 수업보다 개인적으로 공부했던 내용을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코칭해 주는 정도로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 사회의 변화에 맞춰 학교의 체질도 바뀌는 게 당연하다. 이런 학교의 기능에 적응하든지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르든지 결정은 본인 몫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빠른 속도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설마?’ 했던 일들이 대부분 비대면으로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등교수업, 직장 출근 등이 과연 바람직한가 생각해볼 시점이다. 예전과 같이 무슨 수업이든 등교해야만 가능하다는 패러다임을 바꿀 소중한 기회가 왔다. 하지만 모든 게 비대면인 사회로 계속 나아간다면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고 온라인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많이 생겨나 사회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비대면과 대면의 적절하고 절묘한 조합이 중요하다.

온라인수업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시대에 맞춰 교사의 능력도 발전해야 한다. 온라인수업 2년 차인 올해까지 EBS 강의만 링크하는 교사는 스스로 자질이 없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교사는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대에 맞춰 학생에 앞서 먼저 준비해 가르쳐야 한다. 先生의 선자가 먼저 선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대면 시대에 맞춰 발전하지 못하는 교사는 스스로 나와야 한다.

어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학창시절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통해 얻는 추억과 사회성은 소중한 가치다. 코로나19는 아이들 인생의 일부분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오죽하면 코로나19가 끝나면 그 학년을 다시 다니고 싶다고 할까 싶다. 미래에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어도 학교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학교 아니면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사회의 양극화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가 급변하는 만큼 교육의 중심이 가정으로 이동했다. 바람직한 인성을 가진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하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팬데믹 시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