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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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동네 공원 벤치에 노인 두어 명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마스크를 쓴 데다가 발음마저 똑똑치 않은 탓에 대화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고, 한 노인이 큰 소리로 하는 “죽 쒀서 개 주겠나”하는 말도 들려온다. 도대체 무슨 이야긴가 싶어 잠시 귀 기울여 들었더니 정치 이야기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또 대충 들리는 말의 핵심으로 보아서 이번에 이뤄진 검찰인사를 두고 나누는 대화인 것 같다. 좋은 자리를 자기들끼리 나눠먹지 누구 좋은 일 시키라고 칼자루를 맡기느냐는 것인데, 들으니 그 말도 그럴듯했다.

‘죽 쒀서 개 주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통상적으로 아프거나 밥맛이 없는 사람들이 죽을 먹기 일쑤다. 죽을 쑤는 일은 밥 짓기보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성을 쏟아 만든 죽은 같은 식구나 우리편에게 주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있나 보다. 그래서 ‘죽 쒀 개 준 꼴’이라는 말의 우리 속담도 있는바, 정성들인 일이 엉뚱한 부류나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했을 때 사용하는 비유가 아니겠는가 싶다.

그러한 단순한 입장을 보더라도 좋은 과실은 가족이나 뜻이 통하는 우군(友軍)들끼리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거늘, 앞서 공원에서 대화하던 노인들의 검찰인사 비방은 정치 또는 권력의 맛을 모르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한낱 푸념으로 들린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의 마력이라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 다 그러려니 생각해버린다면 국가 공권력을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집행해야 할 관리들의 잘못을 옹호하는 격이 돼 그들이 불평 삼아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리라.

박범계 장관 발 검사장급이상 고위 검찰 간부 인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일 어렵사리 제44대 검찰총장에 오른 김오수 총장이 부임 후 첫 검찰인사와 조직개편을 협의하기 위해 3일 박 장관과 만나 현안을 논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기 좋게 검찰총장이 패싱 당한 것이다. 김오수 총장은 “검찰 인사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으나 박 장관은 4일 고위직 검찰 인사를 발표한바 그 내용은 친정권 인사들의 승진이었고, 정권 수사에 간여한 검사들은 수사권이 없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단적인 예로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이성윤 지검장이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으니 상식을 뛰어넘는 보은인사요, 정권 방탄 인사라는 지적이 많다.

박 장관의 이번 검찰 고위직 인사를 두고 검찰 내부와 법조계에서는 혹평이다. ‘핵심 요직에 친정권 일색’ ‘미운털 박힌 고검장들 전례 없는 강등’ ‘친(親)윤석열 검사의 한직에 두기’ 등 3가지가 특색인 잘못된 인사라는 것이다. 검찰 내 ‘빅4’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수사부장 자리에 친정권 검사들 일색인바, 서울중앙지검장에는 박 장관의 고교(남강고) 후배인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을 배치했고, 그 빈자리인 검찰국장에는 추미애 전 장관의 대변인 출신이 전격 배치됐다.

비단 ‘빅4’가 아니더라도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고검장 자리 10명 승진에서 호남 출신이 5명 승진한 것은 직무적 능력으로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의정부지검 근무시절 윤석열 전 총장의 장모를 기소했던 최성필 중앙지검 2차장이 대검 과학수사부장으로 승진했고, 또 지난해 9월 추미애 전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 사건을 맡아 무혐의로 처리한 김양수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하는 등 그들만의 리그였으니 좋은 세월을 만났다.

그에 비해 작년 ‘추-윤 갈등’ 시기에 추미애 전 장관에게 비판 성명을 발표한 구본선 광주고검장과 강남일 대전고검장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돼 사실상 강등이나 다름없다. 또 무리한 윤 전 총장 징계에 반대했던 조남관 대검 차장은 한직인 법무연수원장(고검장급)으로 밀려났다. 이와 함께 김오수 검찰총장이 박 장관을 만나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수사 일선 복귀를 강하게 건의했지만 불발됐다. 한 검사장은 ‘친 윤석열’ 검사라고 찍혀 추 전 장관에 의해 3번이나 좌천 인사를 당했고, 이번 인사에서도 비(非)수사 보직인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발령 났으니 4번째 좌천 인사가 된 셈이다. 이처럼 위정자들의 검찰인사에서 권력 휘두름은 ‘더 이상 정권을 향해 칼끝을 내밀지 말라’는 강골 검사들에게 보내는 경고로 들린다.

그런 속에서도 문재인 정권에서 부담이 되는 것은 의지 굳세고 올곧은 검사가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과거 정권에서 미운털이 박혀 찬밥 신세의 검사 시절을 어렵게 보낸 적이 있었지만 이번 검찰인사에서 한동훈 검사장의 이야기가 울림이 온다. 한 검사장은 인사를 듣고 “권력의 보복을 견디는 것도 검사의 일이다. 감당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임기 1년이 채 남지 않은 정권 말기에 방탄막이가 그들 입장에서 필요할 테지만 공정․정의에 반하고 국민눈높이에도 어긋난 ‘정권을 사수하려는’ 검찰 인사는 분명 정권에 혹이 붙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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