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동안 세계 미술작품 1만 5000여점 채색분석해
경주박물관장까지 30여년 박물관과 함께하며 연구활동
이화여대 교수 등 거치며 ‘세계 최초’ 수식어가 붙어다녀
‘강우방의 도자기 이야기’ 연재로 놀라운 세계 보여줄터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반골(反骨)’이라 불려도 괜찮다. 잘못된 것은 비판을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고, 옳다는 확신이 들면 세상의 권세나 권위,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방식을 고수한다.
또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지금까지 세간에 알려졌던 학설과 다르거나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 할지라도 새로 발견한 것이 옳다면 이전에 알던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안다.
세계 최초로 ‘조형언어’를 찾아낸 그는 전 세계의 모든 조형예술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세상에 알리는 데 남은 생을 바치기로 했다. 90세를 바라본다는 의미의 망구(望九), 즉 올해 여든한 살이 된 노학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의 이야기다.
일향(一鄕) 강우방(姜友邦) 원장은 1941년 고구려 수도 국내성과 가까운 만주 안동에서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훗날 그는 부모님의 고향이 서울인 데 반해 자신은 고구려 땅에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만주 안동에서 태어난 것은 어쩌면 고구려의 정기를 받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고구려 고대 무덤 벽화의 문양들을 기적적으로 풀어내고 그것이 확장돼 세계 모든 나라의 조형예술품을 해독하게 됐으니 말이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강 원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반전의 연속이다. 아니 그 반전 속에서도 한결같은 줄기가 있으니 외려 ‘뚝심’이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강 원장은 독문과에 입학한 후에도 전공과목보다는 철학이나 종교학, 영문학에 더욱 관심을 뒀다. 여기에 더해 민속학과 미학 등에도 관심을 보이며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공은 소홀해지고 졸업할 때 평점도 좋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학 재학 당시 강 원장은 7년 동안 서예 동아리에 들어가 여초 김응현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기도 했다. 당시 서예계의 태두였던 여초 선생이 수제자로 삼고 싶을 만큼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나 강 원장은 서예를 접게 된다.
“당시 살던 집이 서울대 미대 손동진 교수 옆집이었어요. 자연스레 교수님 화실에서 데생, 스케치, 유화 등을 배우며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에 관심을 가졌으나 결혼 후에 유화도 그만두게 되었죠.”
그렇게 전공과는 상관없이 철학이나 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다. 어쩌면 태생부터 그는 남다른 심미안(審美眼)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생 한 분야에만 집중해도 그 기량을 충분히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강 원장은 그 ‘틀’을 깨고 철학과 예술 전반을 두루 아우르며 자신만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졸업 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에 입문한 그는 15년을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구하고, 이후 15년을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연구했다. 2000년 경주박물관장에서 퇴임할 때까지 그야말로 30여년을 ‘박물관’과 함께했던 인물이다. 퇴임 후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교편을 잡은 그는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설립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평생 일탈의 삶과 학문을 고집’해 온 것이다.
“학부 평점이 C학점에 석사학위가 없었기에 외국 대학에 갈 수 있는 자격은 원천적으로 막혀있었죠. 학위에 관심이 없던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가 한국미술사를 독학했어요. 그렇게 연구에 매진하던 중 1975년 해방 후 한일관계가 처음으로 좋아져서 역사적인 ‘한국미술 5000년 전시’가 대규모로 일본 국내에서 순회 전시했을 때였어요. 일본 정부 측에서 젊은 학자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최순우 관장님이 나를 천거해 일본재단으로부터 매달 상당한 금액을 받았는데 당시 한 달 수령액이 한국에서의 1년치 월급에 맞먹었었죠. 그때 받은 돈은 답사와 미술사 관련 서적을 구매하고 작품을 촬영하는 데 모두 사용하고, 한국에서는 일본 돈을 쓰지 않기로 선언했었어요.”
이후 ‘한국미술 5000년 전시’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면서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1980년 같은 내용의 전시가 진행됐고, 미국 내 순회 전시 때 보스턴박물관에 파견됐던 강 원장은 한국미술 국제심포지엄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발제에 나서게 된다.
“심포지엄에서 영어로 ‘삼국시대 미술과 통일신라미술의 과도기적 양상’에 대해 발표하게 됐어요. 매우 어려운 주제였죠. 그때 하버드의 미술사학과 로젠필드 교수가 듣고 그날 저녁 리셉션 때 저를 1년간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초청할 것을 즉각 제의했어요. 1주일 후 로젠필드 교수가 전화로 부르더니 박사학위가 없으니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이 어떻겠냐고 수정 제안했죠. 저는 방문교수보다 배울 수 있는 대학생이 외려 더 좋았어요.”
강 원장은 석사학위도 없는 자신이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발탁된 것은 심포지엄에서의 발표가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날 이후 미국 전역에 ‘강우방’이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밟던 그이지만 학위는 취득하지 않고 수료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 강 원장은 박사학위는 대학교수가 되는 데 유리할 뿐 학문적 성숙과는 전혀 무관함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위논문은 귀국해서도 가능한 작업이기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바에야 나머지 1년 동안 미국 전역의 유수 박물관에서 세계의 미술품을 조사하는 게 더 유익하다 싶었어요. 그때의 체험이 오늘날의 제가 있게 된 좋은 밑거름이 되었죠,”
평생을 미술사학자로서 국내외 전 세계의 미술품을 연구하고, 강연하며 학자로서의 책임을 다한 강우방 원장. 중요한 것은 그가 해왔던 수많은 국내외 강연들의 주제들이 최초의 연구성과들이라는 점이다. 최근 5년 동안의 국내외 활동만 적어보면 얼마나 광범위하게 열정적으로 활동했는지 알 수 있다.
2014년 7월 그리스 Athens Institute for Education and Research 주최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Architecturalization of the Forest of Cosmic Tree of the Greek and Roman five Ordes’로 그리스 신전 건축의 개념을 오류들을 지적했던 것이 그러했고, 이듬해인 2015년 4월 프랑스 Waset 주최 국제심포지엄에서 ‘Transcendental Birth of the Column from the Full Jar’를 발표하며 파리의 노트르담 고딕사원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한 것이 그러했다.
그해 2015년 봄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3회의 발표와 강연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 6월에 일본 데츠카야마대학(帝塚山大)에서 일본과 중국과 한국의 와당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를 강연하기도 했으며, 2016년 5월에는 열흘간 파키스탄 간다라유적을 답사하고 학회를 통해 ‘간다라미술에 나타난 영기화생의 도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일본 문화청과 국립교토박물관 공동 초청으로 일본의 국보 코지마 만다라(10~11세기)를 발표해 일본 학자들에게 충격을 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이 이제는 일본의 영향을 극복하며 오히려 일본을 가르치게 되었음을 일본 학자들이 처음으로 인정하게 된 역사적 발표였다.
이후 2020년 1월 인사아트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를 말하다’를 진행하며, 동명의 저서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를 말하다(무본당)’를 출간하기에 이른다. 그가 평생을 거쳐 연구하며 세계 최초로 찾아낸 ‘조형언어’가 세상에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그가 또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조형예술품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니 바로 ‘도자기’에 담긴 비밀이다. 그리고 그 도자기에 담긴 비밀이 본지의 ‘강우방의 도자기 이야기’ 연재를 통해 세계 최초로 세상에 밝혀진다.
연재와 관련 강 원장은 “세계미술품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도자기에 드높은 사상과 정신이 담겨 있음을 깨닫고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밝히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전공자들조차 도자기는 음식이나 술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도자기의 형태와 안팎에 베풀어진 문양들을 함께 풀어야 도자기의 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도자기의 문양은 도외시되었고 형태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이 거의 없었다. 형태와 문양은 일체여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며 “이번 연재는 ‘갖가지 도자기 형태와 문양의 관계는 도자기가 모두 영기문에서 화생한다’는 내용이 될 것이다. 그 진리를 밝히는 과정으로 중요한 것은 문양이 도자기 표면에 표현된 단지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문양이 모두 영기문(靈氣文)’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전도된 시각과 생각을 바로잡는 일이라 필자로서도 가능한 한 쉽게 증명하려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도자기의 형태와 내외에 표현된 문양을 다룰 것인데 도자기의 연구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전공자들의 침묵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많은 논문과 저서를 내며 부분적으로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우주에는 영기(靈氣) 혹은 성령(聖靈)이 가득 차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옛 장인들은 갖가지 문양으로 창조했고 바로 그런 문양을 포괄적으로 영기문이라 부른다. 도자기의 형태와 문양에 대한 것은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서서히 깨쳐나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여년 전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면서 학문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강우방 원장. 지난 20여년 동안 세계의 미술품 1만 5000여점의 작품을 채색분석하면서 찾아낸 조형언어. 그 결정판과도 같은 도자기의 비밀이 풀어지는 그 긴 여정이 이제 시작된다. 채색분석법은 미술품을 단지 보는 것뿐이 아니고 읽어내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척한 독자적 해독법이다.
마지막으로 강 원장은 이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독자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다니며 미술품을 감상하고, 무엇보다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실을 자주 둘러볼 것을 권한다. 더 나아가 도자기는 건축-조각-회화-금속기-복식 등 모든 장르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폭넓은 관심 갖기를 권한다. 그렇게 할 때에 조형언어를 보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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