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노동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콜센터 노동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10명 중 9명, ‘폭언’ 노출돼

“정신적스트레스 날로 심각”

상담사 80.3%, 우울증위험군

“휴식시간, 법으로 보장해야”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하루 종일 전화를 받고 상담하는 민원 담당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두통과 이명, 어지러움, 청력저하, 만성피로 등 다양한 문제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재난지원금 과중 업무로 인해 ‘음성 불안정 장애’ 산재처리가 인정된 상담사가 2명이나 있고,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콜센터 직원.

“다닥다닥 붙은 좁은 사무공간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폭주하는 통화량에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민원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럼에도 저희는 친절은 기본이고 응대율, 서비스품질, 고객만족도라는 평가항목으로 매일 평가 받고 있습니다.” - 국민연금공단 서울콜센터 직원.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은 물론 적정 휴식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일하는 전화 상담사들의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객과의 통화 과정에서 언어적 폭력·성희롱·감정노동으로 정신건강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달 공개한 ‘공공운수노조 산하 고객센터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대상자(1397명) 가운데 82.5%가 하루 중 평균 30분 미만의 휴식시간을 갖는다고 응답했다. 상담사 10명 중 8명은 하루에 30분도 쉬지 못하며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건강 지표를 놓고 조사한 결과 전체 인원 가운데 80.3%가 우울증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울증 정상군은 19.7%에 그쳤다. 게다가 장시간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다보니 새롭게 생기거나 악화된 질병 1위는 근골격계(72% 응답) 관련 질병이었다. 이외에도 귀질환 41.4%, 소화기계 37.5%, 호흡기계 34.1% 등으로 조사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산하 고객센터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 우울증 관련. ⓒ천지일보 2021.6.4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산하 고객센터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 우울증 관련. ⓒ천지일보 2021.6.4

◆상담사 22.5%, 고객에게 성희롱 피해

폭언 등 경험과 관련해선 원청이나 동료, 관리자보다는 고객으로부터 받는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고객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무리한 요구 90.6%, 인격무시발언 88.1%, 욕설 85.0%, 성희롱 22.5%로 나타났다. 상담사 10명 중 9명이 업무를 보는 일상 속에서 무방비하게 폭언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석소연 국민권익위원회공무직분회 분회장은 “정부민원안내콜센터 또는 국민콜 110번이라는 이름으로 최일선에서 국민을 만나는 우리는 2007년부터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다가 올해 1월 직고용 공무직으로 전환됐다”면서도 “업무환경이나 업무내용이 개선된 게 없다”고 밝혔다.

그는 “민원인의 폭언에 만성적으로 노출이 되다보니 자존감은 떨어지고 매사에 우울하며 삶의 의욕이 떨어지기도 한다”며 “계속되는 전화에 자리를 뜰 수가 없어 최소한의 생리적 현상도 참아야 하다 보니 방광염 등으로 고생하는 노동자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업무량이 폭주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춘영 국민연금서울콜센터지부 지부장은 “언택트 시대의 비대면 문의인 콜센터는 이전에 비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전화량이 폭주하고 있다”며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실업률 증가, 경제 악화로 고객의 감정은 날로 격해지고, 그 분노와 원망은 고스란히 콜센터의 강성 민원으로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으며 우울증, 불면증, 면역력 저하로 인한 대상포진 등으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재택근무일은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출퇴근을 감행하고 있으며,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이전과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산하 고객센터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 입사 후 질병 관련. ⓒ천지일보 2021.6.4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산하 고객센터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 입사 후 생긴 질병 관련. ⓒ천지일보 2021.6.4

◆“잠깐의 휴식시간 절실한 상황”

이어 “콜센터 측은 노동자들에게 개인위생과 방역수칙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콜센터 관리지침인 1시간마다 5분, 또는 2시간마다 15분 휴식 등은 권고사항이라는 이유로 잘 지켜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폭주하는 전화량과 불만민원의 과중한 업무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잠깐의 휴식시간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시대는 변해 업무량은 현저히 늘었는데 응대율과 평가기준은 이전과 동일하게 요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전화 상담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예방적 대책 마련을 위해 이들의 감정노동에 따른 우울증, 직무소진과 직무스트레스에 관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고객센터 전반의 운영과 평가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며, 피해를 겪은 이들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울러 적정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작업장을 개선해 질환 발생 위험도 줄여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한 지부장은 “사측은 코로나시대 필수노동자 보호 관리지침에 따라 휴식시간을 부여하고 콜센터 노동자들의 건강보호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정부는 권고사항 지침으로만 그치지 말고 휴식시간을 법으로 명문화해 열악한 환경의 콜센터 노동자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국민은행콜센터그린시에스지회 지회장도 “전화를 받기 위해 상담사들은 계속해서 대기를 해야 하고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한다”며 “몸으로도 노동을 하고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노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쉴 수 없다. 감정노동자를 보호한다면 법으로 상담사들의 휴식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지회장은 노조원들이 힘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노동조합을 통해 우리 직장을 바꾸고, 이 사회를 바꾸는 노력들을 계속 함께해야 한다”며 “정부도 노조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대화·교섭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그 어떤 불이익도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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