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광복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2021년 6월의 독립운동가. (왼쪽부터: 이선호, 이동환, 박래원, 권오설) (제공: 국가보훈처) ⓒ천지일보 2021.6.4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광복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2021년 6월의 독립운동가. (왼쪽부터: 이선호, 이동환, 박래원, 권오설) (제공: 국가보훈처) ⓒ천지일보 2021.6.4

6·10만세운동 주요 역할 한 인물들

조선공산당·천도교·학생 조직 연합

이념을 초월한 민족 통합을 이뤄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6·10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권오설(1897년~1930년), 이선호(1904년~1950년), 박래원(1902년~1982년), 이동환(1901년~1982년) 선생을 2021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6월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융희황제 장례 행렬 모습 등 8점을 전시한다.

권오설(權五卨), 이선호(李先鎬), 박래원(朴來源), 이동환(李東煥)은 6.10만세운동의 준비·전개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올해 95주년을 맞은 6.10만세운동은 융희황제 승하(昇遐)를 계기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과 천도교 세력, 학생 조직이 연합해 전개한 제2의 만세운동이다.

권오설은 6.10만세운동 준비의 총 책임을 맡아 천도교 세력과 학생 조직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격고문’ 등을 작성했다. 그리고 천도교계로 경성인쇄직공청년동맹 회원인 박래원에게 격문 인쇄와 전국 배포를 부탁했다.

박래원은 천도교 인사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 격문 5만여장을 인쇄하는 등 천도교 세력의 6.10만세운동 동참을 이끌었다. 그러나 거사 4일전 숨겨 놓은 격문이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면서 권오설과 박래원은 각각 징역 5년형과 3년형을 언도받았다.

인산 당일 만세운동 시작의 역할을 담당한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 간부 이선호는 6.10만세운동 계획이 발각된 상황에서도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을 예정대로 추진했다. 그는 1926년 6월 10일 오전 융희황제의 장례 행렬이 종로 3가 단성사(團成社) 앞을 통과할 때 태극기와 격문 등을 배포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선도했다.

한편 독자적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통동계의 이동환은 각 학교에 선언문을 배포하며 학생들에게 동참을 권유하고 거사 당일 오전 단성사 앞에서 이선호 등과 힘을 합쳐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당일 오후 일제 경찰이 만세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이선호·이동환은 현장에서 붙잡혀 각각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다. 6.10만세운동은 학생이 독립운동의 주체로 성장하고 이념을 초월한 민족 통합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의 발전적 지향을 보여줬다.

정부는 권오설·이선호·박래원·이동환의 공훈을 기리어 2005년 독립장(권오설), 애족장(박래원), 1991년 애국장(이선호), 1990년 애족장(이동환)을 추서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